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영월 서강자락이 고향인 나는 어린 시절을 자연보다 더 자연처럼 보냈다. 달뿌리풀 뿌리를 캐먹고, 거위벌레 알을 찾아 먹고, 사마귀 알집을 구워 먹기도 했다. 여름밤 별을 헤아렸고, 별똥 떨어지는 것을 보아두었다가 이튿날 별똥을 찾으러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그때 별똥이라고 먹었던 것이 고라니 똥이었다는 것을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숲이 소화시킨 냄새들, 어둑한 경계로 마을과 나누어지던 숲.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와 숲이 흔들리는 소리의 틈에서 자란 내 어린 날이 이 책을 쓰는 내내 찾아왔었다는 고백을 한다.
이 경이로운 자연을 놀이터로 자란 나에게 어느 날 새로운 눈으로 또 다른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생태교육연구소 ‘터’ 자연안내자 활동과, 숲 해설가 양성교육을 받으면서부터다. 차츰 숲을 찾는 일이 잦았고, 책장에는 나무 풀 곤충 생명의 온기로 가득한 책들이 늘어났다. 철철이 피고 지는 꽃들, 그 속에서 수런대는 그들만의 소소한 이야기는 밤잠을 설치기에 충분했다. 그 속에는 늦도록 뛰어놀던 내 어린 날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수런거리는 숲의 소리들을 글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 나무 곤충, 그리하여 사소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 그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고, 무릎을 접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숲 이야기들, 그 속에는 자연과 더불어 놀고, 먹고, 어린 날처럼 뛰어 놀았다는 흔적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저 잎으로 어떻게 뭘 하고 놀았지 어떻게 먹었지 저 열매는 무슨 맛이 났었지 저 꽃으로 무엇을 하고 놀았지 이런 것들이 내가 숲을 찾는 이유였고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이다.
밝히지만 나는 식물을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 숲을 좋아하고 자연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 생태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여간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전문 서적을 뒤척이고 인터넷을 검색해 자료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그들의 지식이나, 이론들을 옮긴 점을 고백한다. 하여,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못한 점 이 지면을 통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해가 두 번 바뀌도록 매주 1회 충청리뷰에 연재했던 ‘신준수의 숲이야기’, 충청북도 충북뉴스에 연재된 내용들을 다듬고 보태어 묶어낸 것이다. 이 글이 연재되도록 지면을 허락해 주신 충청리뷰, 충청북도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이 글이 연재되는 동안 격려를 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주시고 격려해주신 충북 숲해설가협회, 생태교육연구소 ‘터’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파리지옥’이 자연이름을 나에게 선물해준 ‘터’ 자연안내자들에게도 꾸벅 절한다.
무심히 지나쳐온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각자 이름이 있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우쳐가는 중이다. 앞으로 돋보기로 숲을 들여다보는 자세로 자연에 더가까이 다가가 나무, 풀, 곤충, 그 존재의 아름다움에 무릎을 꿇는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어 놓는다.
우연히 펼쳐 손에 들린 이 책이 어머니의 품에 기댄 듯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0년 9월 파리지옥 신준수
※ 2010년 환경부 우수환경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