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책은 보편성만을 지향하는 정치사상 연구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의 대부분은 우리 공동체의 현실적인 문제들과는 거리가 먼 주제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에 부여한 역할은, 점차 도구화 되어가는 정치의 의미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문제와 결부시키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정치의 본질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때 초래되는 정치와 철학의 갈등이 플라톤 정치사상의 조건이자 플라톤 정치철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이러한 플라톤 정치사상의 특징을 ‘영혼 돌봄의 정치’로 명명하였다. 일상적이며 상투적으로 보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철학적’이다. ‘삶의 의미는 어차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급진적 상대주의를 취하거나, ‘삶의 의미는 결코 알아 낼 수 없다’는 극단적 회의주의를 취하지 않는 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묻게 되고, 이는 결국 ‘좋음’ 자체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철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좋은 삶에 대한 철학적 추구가 정치 공동체 안에서 순탄하게 이뤄질 수 없다는 데 있다. 플라톤 정치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철학과 정치의 근본적인 갈등에 대한 인식이 플라톤 정치철학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이런 플라톤의 생각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는 이 책의 본문에서 차차 검토될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이런 플라톤의 문제의식이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적실성을 갖는가에 관해서이다. 정치와 철학의 갈등이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보편적인 문제가 진정으로 정치와 철학의 갈등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누구든 이 갈등의 의미를 재고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할 것이다. 혹자는 종교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고 기대할지 모른다. 종교적 신념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정치와 철학의 갈등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 역시 정치 공동체와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다. 굳이 신학-정치적 난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종교가 현대 자유주의 국가가 희망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