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100여 년 전 조선, 만화로 재현하다!
한일비교문화세미나팀은 4년 전부터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장수한 잡지 <조선>(1908년 창간, 1911년 이후 <조선급만주>로 개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에 관한 지식을 저널리즘의 장(場)에서 어떻게 생산·분류·유통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던 중에 그 잡지에 수록된 만화 컷들이 주목을 끌었는데, 그 만화들을 그린 사람이 도리고에 세이키(鳥越?岐)라는 인물이며, 또 그가 <조선만화>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번 는 탄생하게 되었다.
이미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 등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출간된 잡지를 복간하여 그 시대를 살아간 조선인들의 모습과 일본인들의 시선을 포착해낸 서적들이 이미 독자들에게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광복 이후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이 자료물들은 당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되고, 또한 대중들에게 민족의 암흑기로 불리던 그 시대에도 조선인은 면면히 그들의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음을 인식시켰다.
일본인들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이미 조선을 여행하거나 거주하며 조선사정에 관해 많은 기록물들을 남겼다. 일찍이 근대 일본 민권운동의 결사 중 하나인 민유샤(民友社)의 일원이었던 혼마 규스케(本間久助)의 ‘조선정탐물’이라는 (1894)를 비롯해 가쿠치 겐조(菊地謙?)의 (民友社, 1896)이나 법학자 신노부 준페이(信夫淳平)의 (東京堂書店, 1901) 등이 그것이다.
이번 <조선만화>는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희귀한 텍스트로서, 만화라는 신선한 재미가 가미된 시각적 장르로 조선의 풍물과 사람들, 생활 풍습과 지리 등을 재조일본인의 생생한 시각으로 소개하고 있어 당시 조선에 머물며 조선인들을 대하던 일본인들의 생각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의 조선 인식은 ‘금강산’‘기생’ 등 천편일률적이었으며 매우 편협되었는데, 이후에는 이러한 편협된 조선 인식을 비판하며 더욱 폭넓은 조선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일본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출간물이 다수 나오기도 하였다.
<조선만화>는 만화와 글, 하이쿠로 이루어진 다소 복합적인 구성방식으로 이뤄져 있는 서적으로서, 소재 등에 있어서는 다양하나, 그 비웃음의 시선은 한국 독자들의 공분이 예상될 정도로 매우 자극적이다. 조선인들을 폄하하고 왜곡하는 시선은 곧바로 내지의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본에서 조선을 미개의 국가로 비하하고, 당시 일본의 식민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끼쳐, <조선만화> 속 조선은 불결, 천하태평, 무신경, 무능, 여성성으로 비치며, 일본인들이 식민지화 과정 속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재생산함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그 이미지를 이용했다.
1. 구성방식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다. 우선 Ⅰ장에서는 <조선만화>라는 텍스트의 구성과 기획의도, 그리고 그 특성과 의미를 살피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Ⅱ장에서는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 모습의 재현에 충실하고자 한다. <조선만화>라는 텍스트의 번역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Ⅱ장의 번역은 결과적으로 보면 만화의 해설 부분만을 번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선만화>라는 텍스트가 만화와 만화의 해설, 그리고 100수의 하이쿠로 이뤄진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만화를 ‘읽는다’ 혹은 ‘번역한다’는 관점에 근거해서 텍스트 번역에 임했다. 그를 위해 <조선만화>에 수록된 만화 이외에 다른 매체에 수록된 만화 작품들도 병행하여 읽어갔다. 그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Ⅲ장의 ‘만화로 읽는 조선과 조선 知’이다. 여기에서는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이뤄진 조선에 관한 지식의 다양한 유형을 살폈다. 도리고에라는 화가가 잡지 <조선>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자신의 저서에서 보여준 만화의 유형을 제시하고, Ⅱ장의 <조선만화>에 수록된 만화들과 비교하여 살폈다. 마지막으로 Ⅳ장에서는 ‘국민문화사’ 기술의 욕망, 즉 내셔널(national)한 상상력의 산물인 듯 보이는 <일본만화사>의 근저에, 실은 국경을 넘어 만화로 그려낸 조선에 대한 문화번역의 경험이 관통하고 있음을 논하였다.
2. 만화와 글 그리고 하이쿠로 구성된 문화번역서
<조선만화>는 제목과 달리 만화로만 구성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당시 제국의 아카데미즘 바깥에서 저널리즘을 통해 이뤄진 다양한 조선 재현의 방법을 동원한 것이었다. 그 전체적인 구성의 대강을 보면 이렇다. 우선 당시 조선 사회의 계급과 계층, 음식과 놀이, 그리고 다양한 풍물 등을 다룬 50개의 제재를 설정하고, 이미 그려진 ‘만화’에 대해 우스다 잔운(薄田斬雲)이 부연 설명한 ‘해설’을 덧붙여 구성되어 있다. 50개 제재의 만화와 해설에는 각각 제목이 붙어 있는데, 대개는 만화 속의 제목을 해설의 제목이 따르고 있다.
대신(大臣)행렬 / 온돌의 독거(獨居) / 하이칼라 기생 / 우도(牛刀) / 종이연 날리기 / 갈보집 / 단단히 좋소(タンダニ, チヨツソよ, 가타카나-한국어) / 묘 앞의 통곡 / 묘 주변의 석상(石像) / 조선 장기 / 제게챤다(제기찬다チェ-ゲチャンダ, 가타카나-한국어) / 돈치기(錢擲, トンツキ라는 가타카나 부기) / 신선로 / 엿장수(飴賣) / 점두(店頭)의 우두골(牛頭骨) / 한인의 떡방아 / 우동집 / 군밤 / 떡장수 / 한인집의 부엌 / 옛날의 큰 배(大船) / 옛날의 조선 관리(役人) / 옛날의 한선(韓船) / 옛날의 악기 / 조선말(馬) / 우하(牛下)의 낮잠 / 무동(舞童) / 요보의 싸움 / 석합전(石合戰) / 요보의 톱질(木挽) / 조선의 가마 / 조선의 인왕님 / 돈 계산 / 신문의 낭독 / 기생의 춤 / 요보의 주머니(巾着) / 변기 세척 / 한인의 우구(雨具) / 변기와 세면기 / 쌀찧기 / 유방의 노출 / 참외 / 매복(賣卜)선생 / 잔털뽑기 / 걸식 / 조선의 모자 / 조선 차부 / 부녀자 풍속 / 조선 신사 / 승려
3. 조선토산의 출판물이라 자부한 ‘우스다 잔운’과 ‘도리고에 세이키’
2년여 남짓을 조선에서 체류하며 조선의 상황을 만화로 비평한 ‘만화저널리스트’ 도리고에 세이키(鳥越?岐). <조선만화>의 해설 부분을 맡았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우스다 잔운(薄田斬雲). “조선은 어떤 곳인가”라는 내지 일본인들의 궁금증에 대해 그들은 조선만화를 통해 답하고자 했다. “오랜 동안 경성에 거주”했다는 그들은 조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자신들의 위치를 강조했다. 즉 재조일본인이라는 자의식에 근거한 이 기획을 두고, 그들은 ‘조선토산’의 출판물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대신, 조선 양반, 기생, 백정, 아동, 부녀자 등 다양한 계층과 성별을 대상으로 하다가, 조선의 관습이나 음식과 풍물 쪽에도 소재거리를 찾는 등 조선토산의 특징을 꽤나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시선에는 역시 문명인이 미개인을 바라보는 편협된 시각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러한 면모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조선어 소리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일본 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조선인을 분류할 때는 ‘ヨボ’(요보), ‘チョンガ’(총가), ‘アヒ’(아히), ‘ヨンガミ’(영가미)라고 표기하여 조선어 소리를 사용했다. 대개 해설 부분에서 일본어 번역 없이 그대로 조선어 소리만을 적는 경우가 많았다. ‘アイゴ-’(아이고), ‘チ-バリ’(치바리=제발) 등의 감탄사나 ‘ビンデ’(혹은 ‘ピンデ’, 빈대), ‘つるまき’(쓰루마키), ‘ウリ’(우리), ‘チヤンニム’(장님), ‘パンス-’(판수), ‘ハンガチ’(한 가지)와 같은 말, 그리고 “ユンノンダ(윷논다)와 같은 간단한 표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