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시린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집안의 이익 추구에 이용될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촌과 정사를 벌이는 미래의 약혼자조차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남들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아름다운 첫날밤을 보낼 것이라 기대했었다.
‘빌어먹을 처녀’ 운운하며 침이라도 뱉을 듯 역겨워하는 남자와
나누는 그런 섹스가 아니라, 적어도 섹스를 나누는 그 순간에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그런 남자와 함께 나눌 첫 밤을…….
운명은 우연을 가장한 채 다가온다…….
“거래를 했으면 해요.”
필요에 의해 시작된 인연.
폭풍 같은 열망. 태양을 삼키듯 뜨겁게 새겨진 낙인!
“안 돼. 내가 안 돼. 이젠 내가…… 안 돼……. 봐줘. 네가 날 좀 봐줘…….”
끝을 알 수 없는 그들의 사랑愛.
서로를 향한 뜨거운 유혹이 시작되었다.
2권
황량한 겨울, 텅 빈 세상에서 겨울나비는 힘없는 날개짓을 시작한다.
“겨울나비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요?”
“겨울나비?”
“그래요. 겨울나비. 겨울인 줄 모르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 겨울나비.
따뜻한 겨울 날씨에 간혹 그런 나비가 있대요.”
“…….”
그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하얀 목에 입술을 파묻었다.
그녀의 공허한 눈빛이 허공을 향했다.
“겨울나비는 얼마 못 가 죽는대요. 자신이 날아야 할 때를
잘못 알고 날아오른 대가로…… 차갑게 얼어 죽는대요.”
겨울을 닮은 그녀와 봄빛을 닮은 그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화려하고, 폭발하는 화산처럼 격렬하다.
오랜 시간 숙성된 와인처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연인들처럼.
한겨울 밤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그들의 사랑도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