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어째서 도시 사람이 쓸 전기 때문에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지? 원전 사고를 취재한 <아사히신문> 기자, 사이토 겐이치로- 그런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이런 세상이 싫어져서 전기와 헤어지기로 했다.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날 당시, <아사히신문> 소속으로 현장을 취재한 기자 사이토 겐이치로는 사고가 일어난 지 6개월 만에 도쿄로 발령받는다. 대도시로 돌아오자 뭔가 자신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전에는 거리낌없이 쓰던 전기가 직감적으로 싫어진 것이다.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빨간 램프도, 후쿠시마의 고통은 모두 잊어버렸다는 듯 불빛을 뿜어내는 도쿄라는 도시도. 한번 콘센트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자 다시는 전처럼 전기를 쓸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당시 수상 노다 요시히코는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국민생활을 지킨다."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는 이 기만적인 말에 분노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뭔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한, 그런 말을 들으며 분노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 끝에 전력회사나 국가의 거짓말에 놀아나지 않도록 전기에서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작은 행동이 그 높고 단단한 세상을 건드리지 못할지라도, 후쿠시마 사람들의 희생을 본 이상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기에. 극도의 절전 5암페어 생활, 그러나 즐겁고 우아하게! 더 이상 전력회사와 국가에 속지 않고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집에서 사용하는 전류 양을 5암페어로 제한하기로 했다. 단 조건 하나를 스스로 내걸었다. “무리하지 말 것. 그러면 오래 계속할 수 없으니까.” 청소기를 쓰지 않는 대신 장인이 만든 멋진 빗자루를 사서 방을 상쾌하게 청소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냉장고를 쓰지 않는 대신 질 좋은 음식을 그때그때 사서 먹거리 본래의 맛을 한껏 즐겼다. 난방을 충분히 하지 못해 추운 집 안을 친구들과 전골파티를 하며 데워 보기도 했다. 물론 이런저런 시도가 먹히지 않아 여름의 더위, 겨울의 추위를 못 이겨 낙담한 적도 많다. 그러나 집 안에 있는 모든 전기제품의 콘센트를 뽑고 출근하던 날 아침, 전력회사에 더는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그날의 상쾌함만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었다. 나고야로 이사한 그는 태양광발전 패널을 베란다에 설치하여 스스로 '건강제1전력'(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 지음) 발전소장으로 취임하고 5암페어 생활의 상쾌함을 널리 알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 일본의 주부전력, 도쿄전력 등 일부 전력회사는 각 가정의 상황에 맞는 전류 계약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한다. 암페어를 낮추면 기본요금이 낮아지는데 이 책의 저자가 선택한 5암페어 계약은 전자레인지나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의 초절전형이다. 한국의 한국전력은 5킬로와트를 기본 전력으로 삼아 일괄 계약하는 형태를 취한다. 특수한 상황에 따라 전력을 높여 계약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기본요금에 차이는 없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가산되는 누진제도를 택한다. 저자와 이별한 가전제품들의 소비전력 (그리고 이 물건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 1년여 동안의 5암페어 생활이 남긴 것 2013년 12월 전기 사용량은 2킬로와트시. 1000와트를 쓰는 에어컨을 110볼트 전압에서 2시간 정도 사용한 수준이다. 여름은 선풍기나 돗자리 등의 도움을 받아 자연의 힘을 최대한 빌려 생활하고, 겨울엔 단열 용품들과 조개탄 화로 등으로 난방하여 얻은 결과다. 집 안에는 전원을 꽂아두는 가전제품이 하나도 없다. 집을 비울 땐 아예 차단기를 내려도 될 정도다. 비데와 세탁기는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두 물건도 전처럼 쓰지는 않는다. 세탁기는 전력 측정기를 꽂은 채로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탈수할 때 가장 전력소모가 많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표준 설정이 아닌 수동 설정으로 탈수를 짧게 마친다. 비데는 변기 시트를 데우는 기능은 사용하지 않고 빨아서 쓸 수 있는 시트를 깔았다. 암페어 생활은 극한 체험을 하자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제값을 주고 샀다.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효율 좋은 선풍기, 가전제품들의 전력소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전력측정기,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휴대용 냉장고 등이 그것이다. 얼마 쓰지 않는 전기량도 자급하기 위해 태양광패널을 설치하기도 했다. 전에는 국가와 전력회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다가 원전사고를 계기로 그들이 불리한 사실은 숨기기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정 든 삶터와 재산,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었다. 대도시는 지금도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냐는 듯 전기를 펑펑 쓰며 돌아가고 있다. 무섭도록 무심한 욕망 때문이다. 저자는 미약하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힘을 믿고 5암페어 생활을 계속해나갈 작정이다. 후쿠시마 사람들, 풍요로웠던 그곳을 잊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