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비평 계간지「볼 BOL」에서 발간한 '볼 컬렉션 BOL Collection'의 첫 번째 책. '볼 컬렉션'은 미술과 시각문화의 시공간적 맥락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저널「볼」의 기획방침에 부합하는 아티스트 북 시리즈이다. 저널「볼」에서는 2007년도부터 매년 1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작가가 직접 쓴 글과 사진, 영상 등의 이미지를 결합하는 아티스트 북을 기획하고 있다. '볼 컬렉션'은「볼」에 수록되는 아티스트들의 지면 작업인 아티스트 페이지와 차별화된 주제를 담고 있으며「볼」과 독립된 형식으로 구성된다. <행인>은 박주연이 터키의 이스탄불에 체류했던 3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과 나눈 여행담(travelogue), 일련의 생각들, 대화들을 허구화하여 스크립트(script)형식을 빌어 기록한 일종의 작가노트이다. 단조롭게 묘사된 삶의 단편들은 그동안 작가가 지속적으로 성찰해 온 존재와 부재에 관한 고민들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삶이 숨기고 있는 극적인 순간들, 즉 고양이의 죽음,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죽은 천재들과의 대화,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린 소녀의 그림, 이란 출신의 시인 파로크하자드(Forugh Farrokhzad)의 시 <또 하나의 탄생 Another Birth> 등을 통해 작가는 진실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책의 등장인물들은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 없이 난생 처음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신들의 삶에서 아직 구현되지 않은 ‘무엇 something’을 찾으려는 동기를 공유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모호한 상황은 아주르(Azure, 푸른 하늘색 혹은 감청색), 비스크(Bisque, 견과류색, 베이지, 옅은 브라운), 틸(Teal, 청록색)과 같은 불분명한 색상을 일컫는 그들의 이름과 일치한다. 작가는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인 행인의 시각으로 이스탄불의 일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공원, 골목, 바닷가에서 ‘발견한’ 소소한 일상들은 8mm 필름, 16mm 필름, 사진 등으로 기록되고 박주연은 이 이미지들을 스크립트와 함께 하나의 작업으로 묶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