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 한기범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Ⅰ. 염선재의 선계(先系)
1. 순천김씨의 연원과 염선재의 선대 가계
2. 염선재의 7대조, 절재 김종서
3. 계유정난(1453) 후 절재의 후손들
Ⅱ. 염선재의 생장과 혼인
1. 염선재의 출생과 어린 시절
2. 사계 김장생의 계배(繼配)가 되다
Ⅲ. 염선재의 가족과 가정생활
1. 염선재의 부군, 사계 김장생
2. 부군을 위한 조용한 내조
3. 8남매의 어머니, 염선재 순천김씨
Ⅳ. 부군의 죽음과 염선재의 절사(節死)
1. 부군(夫君)의 죽음
2. 삼년상(三年喪)을 마친 후 단식으로 절사(節死)하다
3. 염선재의 절사가 지니는 의미
Ⅴ. 사계의 아홉 아들
1. 아홉 아들들의 형제적 우애
2. 염선재 소생의 여섯 아들
Ⅵ. 염선재의 절행(節行)에 대한 후대인의 현창
1. 염선재의 신후문자(身後文字)
2. 재실 ‘염선재(念先齋)’의 건립
3. 1906년 정부인(貞夫人)의 칙명 교지
4. 『잠소록(潛昭錄)』의 간행과 정려
5. 잠소사(潛昭祠)의 건립
책말미에
부록
사계고택 주련(沙溪古宅 柱聯)
창녕 성선생 유허비(김비의 글씨)
양성당제영(養性堂題詠)(김비의 글씨첩)
잠소록(潛昭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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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선재 순천김씨의 삶과 절행
한기범 · 역사
202p

염선재는 단종대에 좌의정을 역임한 절재 김종서의 7대 손녀이다. 김종서는 세종대에 6진 개척으로 조선의 북쪽 영토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고, 단종대에는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욕으로부터 단종을 지키려다가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난(1453)으로 반역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 그의 직계 3대는 거의 몰살되는 참극을 당하였으나 일점혈육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혈통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신분을 감추고 음지에서 근근이 생존을 유지하여야 했다. 염선재 순천김씨의 친정 가계가 바로 그들이었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순천김씨의 생애에는 그 속에 조선 시대의 비정한 정치사가 담겨 있고, 조작된 역적의 후손으로 살아가야 했던 몰락한 가문의 한 여성의 한과 설원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양반가 여성의 생활사의 일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고, 특히 조선 여성의 출중한 효열의 정신이 배어 있다. 책에는 이 외에도 염선재의 친가인 순천김씨의 역사와 특히 그의 7대 선조 절재 김종서의 절사와 신원에 대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또한 염선재의 시가인 연산 광산김문의 역사와 특히 부군인 사계 김장생과 그 아홉 아들들의 이야기가 염선재의 활동상을 곁들여서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저자/역자
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조선 사회는 유교 이념, 특히 성리학적 사고가 지배한 사회였다.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의리(義理)와 명분(名分)을 중시하고, 현실적으로 계층적 신분제를 인정하면서, 명실(名實)이 일치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양반층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명분 사회의 틀 속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 틀에서 억지로 이탈되어 고난을 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그것이 반역(叛逆)과 같은 특정의 정치적 사건으로 왜곡된 것일 경우, 그 피해는 치명적이었고 관련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기간은 대를 이어 수십 수백 년을 헤아리기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염선재 순천김씨(念先齋 順天金氏 : 1572~1633)도 그런 고통과 회한을 안고 살아야 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염선재는 단종대에 좌의정을 역임한 절재 김종서(節齋 金宗瑞 : 1383~1453)의 7대 손녀이다. 김종서는 세종대에 6진 개척으로 조선의 북쪽 영토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고, 단종대에는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욕으로부터 단종을 지키려다가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난(1453)으로 반역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 그의 직계 3대는 거의 몰살되는 참극을 당하였으나 일점혈육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혈통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신분을 감추고 음지에서 근근이 생존을 유지하여야 했다. 염선재 순천김씨의 친정 가계가 바로 그들이었다.
17세가 되었을 때 염선재는 기호학맥의 적전으로서 후일 서인계 산림의 종장이 된 사계 김장생의 계배(繼配)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때 마침 사계는 첫 부인 조씨의 상을 당하여 막 3년상을 끝내고 있던 때였다. 염선재는 그의 조상인 절재 김종서의 신원(伸寃 : 억울함을 밝혀 원통함과 부끄러움을 씻어버림)을 위하여 신분을 감추고 명문대가인 사계 가문에 시집 온 것이었다. 2년 후 장자 영(榮)이 태어나자 염선재는 이 사실을 사계에게 고백하였고, 사계는 부인의 비원을 이해하고 절재 김종서의 명예 회복의 당위성에 공감하였다.
그러나 여건이 성숙되지를 못하여 끝내 조정에 그 뜻을 상주하지 못하고 죽었고, 김씨부인은 이것을 한탄하며 단식으로 자진(自盡)하여 사계의 뒤를 따라 절사(節死)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부군이 죽으니 따라 죽은 단순한 절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어간 7대 선조 절재 김종서의 신원(伸寃)이 이뤄지지 못함을 한탄하여 스스로 선택한 효열(孝烈)의 죽음이었다.
그에게는 그의 사후 161년에야 국가로부터 정부인의 첩지가 내려졌다. 그가 살던 두계에는 정려비와 정려각이 세워지고 염선재라는 재실과 잠소사라는 사당이 세워져 후손들의 향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이러한 순천김씨의 생애에는 그 속에 조선 시대의 비정한 정치사가 담겨 있고, 조작된 역적의 후손으로 살아가야 했던 몰락한 가문의 한 여성의 한(恨)과 설원(雪寃)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양반가 여성의 생활사의 일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고, 특히 조선 여성의 출중한 효열(孝烈)의 정신이 배어 있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염선재의 친가인 순천김씨의 역사와 특히 그의 7대 선조 절재 김종서의 절사와 신원에 대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또한 염선재의 시가인 연산 광산김문의 역사와 특히 부군인 사계 김장생과 그 아홉 아들들의 이야기가 염선재의 활동상을 곁들여서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염선재 순천김씨의 출중한 효행 절행과 함께 17세기 양반 가정생활사의 일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이 책의 또 하나의 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