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어긋나는 세계, 낯선 불안 속에서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익숙한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는 다섯 가지 이야기, 그 기묘한 틈을 들여다볼 용기가 있는가?"
김구도영의 단편 시나리오집 『조수석에 앉은 여자』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독특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규범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품이다. 다섯 개의 시나리오와 함께,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관계의 단절, 그리고 억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첫 번째 이야기 「피노키오들」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보육원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동화적 설정을 활용해 거짓과 진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갈등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코가 길어지는 기준이 불분명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오직 ‘선택받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행위가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펼쳐진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강요되는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편견을 은유하는 동시에, 개개인의 진실이 억압되는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이어지는 「이빨 요정은 비행기 못 탔나 봐」에서는 미국에서 온 한국계 소녀 ‘별’과 반장 ‘지효’의 관계를 통해 문화적 차이와 소통의 문제를 다룬다. 이빨 요정이 한국에 없다는 말은 별에게 너무나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제목처럼 요정이 비행기를 타지 못했나 보다, 하고 울적하게 수긍하는 아이의 모습은 자못 천진하며 이후 이어지는 화해는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세 번째 이야기 「무(無)」는 죽은 아버지의 흔적이 기괴한 무의 형상으로 되살아나는 이야기로, 가족과 유산, 그리고 벗어나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수인은 아버지의 존재를 거부하려 하지만, 점점 인간의 형상을 닮아가는 무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먹음으로써 그의 흔적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죽음은 무(無)가 아니며, 존재는 어떻게든 그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섬뜩한 은유로써 표현했다.
네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조수석에 앉은 여자」는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기묘한 설정 없이도 깊은 불안을 자아낸다. 실제 있었던 총격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연인과의 저녁 식사라는 일상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면서 감각적 불편함을 조성한다. 대화는 겉돌고, 트럭은 고장 나며, 영업 중이라던 식당은 문이 닫혀 있다. 이 모든 요소는 주인공이 처한 경계적 위치와 불안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인물과 함께 불안의 감각을 체험하게 만든다.
마지막 작품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는 디지털 시대에서의 관계 단절과 소통의 부재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주인공 지윤은 온라인 상담을 하며 타인의 고민에 빠르게 답변을 남기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의 생각을 아무리 추측해 보아도 평생 함께 산 딸도 답을 내지 못한다.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엄연한 타인인 엄마와 딸 사이에는 이해의 간극이 있었으며, 그것이 결국 엄마의 실종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는 그에 대한 당혹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시나리오집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사회적 규범과 통념, 그리고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억압을 독창적인 설정과 감각적인 연출로 풀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김구도영의 글은 섬세하면서도 대담하고, 기묘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수록된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과연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에 대한 답은 오로지 독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