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Three Kingdom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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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 한 왕조가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동탁이 도성을 함락하자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여기저기서 민란이 일어났다. 무예 실력이 출중한 여포는 동탁의 양자가 되고 여포 휘하의 서량군은 천하무적이 된다.    조조는 나라의 혼란을 막기 위해 동탁에게 거짓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기회를 틈타 제거하려 하지만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도성을 빠져나온 조조는 원소, 유비, 손견 등 전국 십팔로 제후를 불러모아 회맹을 갖고 함께 동탁을 무찌르기로 한다. 치열한 전투 끝에 동탁은 황제를 납치해 도주하고, 도성은 불탄다.    십팔로 제후 연맹군의 선봉 부대인 손견의 강동군이 도성에 먼저 들어가 중앙 황권을 상징하는 천자의 옥새를 우연히 얻게 되고, 이를 몰래 숨겼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다. 옥새를 둘러싼 암투는 십팔로 제후의 내분을 불러일으켜 연맹군은 와해되고 이로써 전국은 제후들 간의 전쟁터로 변하고 만다.    천도 후 동탁의 만행은 극에 달한다. 조정 중신 왕윤은 동탁과 그의 양자 여포 간의 갈등을 이용하기로 하고 초선에게 ‘미인계’와 ‘이간계’를 합친 ‘연환계’라는 절묘한 계책을 쓰게 한다. 왕윤의 치밀한 계획과 초선의 헌신으로 연환계는 성공을 거두어 동탁은 마침내 자신의 양자 여포의 창 아래 쓰러진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초선은 자신의 사냥감이던 여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마는데......    동탁의 죽음은 오히려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전국적인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이었지만 각 세력 간의 관계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황하 이북은 원래 군사 동맹 관계였던 원소와 조조가 각자 북방 제후를 정복해 나갔다. 여포 역시 그들의 표적 중 하나였다. 마침내 원소와 조조 간에 대전이 발발하니, 이것이 바로 삼국 시대의 첫 번째 대전인 관도대전이다.    이 전쟁에서 수만 군사가 수십만 대군을 무찌르는 놀라운 전투가 벌어진다. 전쟁 후, 조조는 북방을 통일하고, 그의 아래에는 하후돈, 전위, 조인, 장료 등 영웅들이 운집하여 세력은 점점 커지고 제후 중 최고의 실력자가 된다. 이때 장강 동쪽에서는 손견의 아들 손책과 손권이 각고의 노력 끝에 강동의 패주가 되어 늠름하고 지혜로운 주유를 비롯해 태사자, 감녕 등 용맹한 무사들의 충성을 끌어낸다.    중원에서는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입지를 다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조조 군에게 참패를 당한다.  조조는 평소 그 무예를 흠모하던 관우를 사로잡지만, 그가 신하 되기를 거부하자 매우 실망한다.    결국 관우는 홀로 말을 달려 조조의 장수들을 베어내며 오관을 돌파해 의형제 유비를 찾아 떠난다.  마침내 형주에 모이게 된 유비 삼형제는 잠시 머물 곳을 얻게 된다.  유비는 인의와 덕망으로 전략 요충지인 형주의 제어권을 이양받고 ‘삼고초려’ 끝에 당대 최고의 지혜를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제갈량을 책사로 삼는 데 성공한다. 이때 조조 대군이 기습해오자 형주는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유비는 다급한 상황에서 홀로 도주하지 않고, 수십 만 백성을 이끌고 하루에 십 리씩 느린 걸음으로 피난하기를 택한다. 이로써 유비는 더욱 큰 명성을 얻게 된다. 그들은 비록 쫓겨가는 처지였지만 장수들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장비는 당양교에서 천둥같은 고함으로 적군을 물리치고, 조운은 장판파의 불리한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낸 것이다.    조조의 막강한 세력 앞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유비는 어쩔 수 없이 강동의 손권에 의탁한다. 당시 손권 진영 내부에는 주전파와 주화파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는데 제갈량이 나서서 조조와 결전을 치르도록 설득시킨다. 당시 손권의 세력이 강하다 할 수 없으나 지리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며 조조의 북방 군대는 수전에 약했기 때문이었다.    이 즈음 유비는 손상향과 혼인함으로써 동오와 결속을 다진다. 이후 ‘초선차전’의 전략(부족한 화살을 얻기 위해 짚단을 실은 조각배를 띄워 조조의 화살을 받게 한 것), 황개의 고육계, 장간의 반간계 등 일련의 지략 대결이 펼쳐지면서 손권과 유비 양대 세력은 연맹 관계를 맺고 조조에 대적한다. 마침내 주유와 제갈량의 치밀한 작전 끝에, 삼국 시대 두 번째 대전인 적벽대전의 막이 오른다.    제갈량은 동풍의 흐름을 미리 읽고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화공을 펼치도록 하여 장강 위에 쇠사슬로 묶여 연결되어 있는 조조군의 전투함을 모두 불태워 대승을 거두게 한다.    조조는 참패하여 도주하다가 화용도에서 관우와 맞닥뜨린다. 관우는 옛날 조조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명을 어기고 조조를 놓아주고, 유비와 제갈량에게 벌을 청한다.    유비는 관우를 용서해주고, 제갈량이 의리를 중히 여기는 관우로 하여금 화용도를 지키게 한 것은 바로 조조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서였음을 알게 된다. 제갈량은 조조가 죽으면 북방은 다시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며 조조, 손권, 유비가 ‘삼족 정립’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유비가 천하 통일의 실력을 키울 기회가 생길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삼족 정립’은 적벽대전 이후 유비가 엄격하게 지킨 지침이었다. 그는 남하하여 서천을 정복하고 중국 서남의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으며 그 휘하에는 조운, 황충, 마초, 위연 등 탁월한 장수들이 모여있었다. 이때 북방의 조조, 서남의 유비, 강동의 손권이 이루는 ‘삼족 정립’ 구도가 바로 ‘삼국’이다.    삼국 정립 이후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을 곱씹으며 전쟁의 승패는 근본적으로 한 나라의 전체적인 실력에 의해 좌우됨을 깨닫는다. 그는 농업과 경제를 진흥시키고 정치 제도를 개혁하며 파격적으로 인재를 등용하였고, 이로써 북방은 전에 없던 중흥을 이룬다.    하지만 조조의 궁정 내부에서는 적자 계승을 둘러싼 잔혹한 알력 다툼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리지만 똑똑한 아들 조충이 형제에 의해 독살을 당하고 말았는데, 천하의 영웅 조조도 범인의 정체를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야심가 사마의도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데 그는 자격으로 치면 가장 쳐지지만 왕위를 계승할 확률이 가장 높은 조비에게 모든 것을 걸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 준다.    또 한 명의 아들 조식은 유명한 문학가이기도 하다. 조비와 조식 형제는 왕위와 함께 아름다운 여인 견비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한다. 권력, 사랑, 우애, 욕망, 전쟁, 음모... 이 모든 것이 뒤엉켜 모두가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여기에서 조식의 , 와 같은 중국 문학사의 찬란한 걸작이 탄생한다.    유비와 손권의 동맹 관계도 위태로웠다. 그들은 형주의 귀속 문제를 놓고 팽팽한 대립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손권의 부대가 형주를 점령하고 ‘전쟁의 신’으로 추앙 받는 용맹한 장수 관우가 전사하였다.  서천은 일시에 거대한 슬픔에 잠기고 유비는 이성을 잃은 채 제갈량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동을 토벌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니 이는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요, 또한 전략적 요충지 형주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유비의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손권 진영도 극도로 부실해져 적을 맞아 싸울 장수마저 부족한 실정이었다. 손권은 모든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륜도 없는 젊은 육손에게 군사 지휘권을 넘긴다. 육손은 자신에 대한 회의와 멸시를 느끼며 중압감 속에 유비와 8개월간 대치하면서 한여름이 되기를 조용히 기다리는데......    마침내 삼국 시대의 세 번째 대전 이릉대전의 막이 오른다. 육손은 산속 800리에 걸쳐 자리잡은 유비의 군영에 맹렬히 화공을 퍼부어 잿더미로 만든다. 유비는 패배하여 도망치다가 백제성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윤손은 이 전투로 천재적인 군사 재능을 천하에 알렸다.    유비가 죽고 그의 아들 유선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서천의 실질적인 주인은 제갈량이었다.  그는 신중한 자세로 국가를 경영하는 한편, 여섯 번에 걸쳐 북벌에 나서는 등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충심을 몰라주는 유선 등 황실 인물들의 시기를 감내해야 했다.    비슷한 상황이 조조 사후의 북방 궁정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조비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사마의는 왕위 찬탈의 야심을 품고 있었고 두 사람은 음으로 양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충성스러운 제갈량과 야심만만한 사마의라는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은 몹시 유사한 상황에 처하면서 동병상련의 벗이 된다.  제갈량은 사마의의 처지를 깊이 이해했기에 기발한 공성계를 과감하게 운용, 사마의를 무찌르고 이로써 상대의 목숨을 보전해주면서 자신은 한숨 돌릴 여유를 갖게 된다. 백여 년에 걸친 삼국 시대는 제갈량과 사마의라는 양대 지략가의 대결 속에 저물어가고......    서기 280년, 강동의 사마 가가 손씨 정권을 평정함으로써 중국은 다시 통일을 이룬다. 군웅이 활약한 파란만장한 대서사시는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일세 영웅들의 이야기, 그들의 지혜와 기개는 세월이 흘러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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