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른바 학원문단파라는 말이 생길 법도 한 것이, 오늘날 50대의 문인들은 거의 그때의 학원에 다달이 그 이름이 빠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투고 작품을 선고해 주던 분들은, 이미 작고하신 분들도 있지만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급의 문인들이었고, 그 덕택에 대학 재학 시절에 ??현대문학??에서 6개월 만에 시 추천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한국문학사에는 ‘학원세대’로 기억되는 특이한 세대가 있다. 우리는 1952년 11월 창간호부터 1979년 종간할 때까지 학생잡지 <학원>을 읽고 성장한 이들에 대해 ‘학원세대’ 또는 ‘학원파’라고 명명한다. 김원일, 문정희, 박동규, 이청준, 조세희, 최명희, 황동규, 황석영, 이승훈, 안도연 등 일급의 문인들을 비롯해 사회 각 분야의 지성인들 가운데에는 스스로를 ‘학원세대’라고 호명하며 무한한 자긍심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학원세대들이 그토록 애독했다는 <학원>에는 도대체 어떤 문학사적이고 문화사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전쟁 중 창간된 <학원>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한국 영화평론의 거장인 김종원은 자신에게 있어 시의 고향은 <학원>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첫사랑을 앓는 사춘기 소년처럼 <학원>에 매달려, 수업시간에도 설레는 마음으로 뱃고동 소리를 기다”렸고 “<학원>이 나오는 한 달이 왜 그리도 길었던지 짜증스럽기조차 했”다며 학창시절 <학원>에 대해 갈급했던 심정을 밝히고 있다. 제주 4ㆍ3사건과 한국전쟁으로 아버지와 생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십대 소년에게 유일한 위안은 시를 써서 <학원>에 투고하는 것이었다. 위약한 현실 속에서 고독한 소년에게 “시심을 피워준 사색의 꽃밭이자 신앙과 같은 안식처”였던 청소년 잡지. 전쟁으로 피폐해진 청소년들은 <학원>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작정 즐거웠고, 공감했으며 일체감을 가졌다. 진덕규(이화여대 교수)는 어린 시절 나뭇짐을 팔아 모은 돈으로 30리길을 달려가서 막 도착한 <학원>을 사던 기쁨을 평생 간직한 사람이다. 가난한 소년은 <학원>과 <사상계>가 있어 자신들의 세대와 연결될 수 있었고, 두 잡지를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지닐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그 다음 시대의 부채이며, 한 시대의 중심 논리도 비판적으로 극복되지 않는 한 보수적인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또한 비판에는 비판의 논리와 윤리가 있으며, 지식은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비판적인 회의에서 싹튼다는 것을. 진덕규는 혼란스런 청소년 시절 <학원>을 읽으며 한 시대의 지성인으로 성장하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문학’도 입시전쟁을 치루기 위한 텍스트로 선정되지 않으면 그 제목조차 낯선 세상. 요즘 청소년들에게 문학은 수능과 논술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진실은 문학 텍스트에 대한 이해보다 학습지에 빼곡하게 정리해놓은 내용을 수학공식처럼 달달달 암기하고, 시험이 끝나는 동시에 모두 망각한다는 데 있다. 사회 전분야에서 인문학적 사고와 교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입시관련 서적이 아닌 소설, 시집, 교양서 등을 읽고 있는 청소년을 목격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번에 출간된 <학원과 학원세대>(소명출판, 2013)는 전후 발간된 청소년 잡지인 <학원>을 통해 당대 청소년의 문학과 교양, 그리고 소통에 대한 욕망을 찾아 나서게 해준다. 1952년 11월 대구에서 김익달에 의해 창간된 <학원>은 1979년까지 30여 년 이상 장기간 발행되고, 월간지로서 방대한 양을 남겼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청소년 잡지로서 국민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학원>에는 아동ㆍ청소년들의 일상, 문학에 대한 욕망, 문화적 다양성 등이 들어 있다. 청소년 독자의 탄생과 다양한 독서에 대한 욕망 이 책은 먼저 1950년대 청소년잡지와 청소년 독자의 탄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뤄졌는지를 조망하고 있다. 한창 전쟁 중에 창간된 <학원>은 한때 거의 10만 부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린다. 당시 국내 최대 일간지인 <동아일보>가 5만 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에 견주어볼 때, <학원>이 10만 부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은 당시 발행된 잡지들이 대부분 여러 사람에 의해 열독과 회독되었기 때문에 당시 이 땅의 중고생이던 청소년의 절반 이상인 20~3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한 것을 입증해준다. 이처럼 <학원>이 청소년 독자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텔레비전이나 영화, 컴퓨터, 스마트폰 등 청소년들의 오락과 교양을 충족시킬 매체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전쟁으로 할 일이 없어진 고급인력(지식인, 화가, 작가 등)을 총동원하면서 잡지의 권위와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잡지는 창간호부터 컬러 인쇄 방식을 도입해 원색 인쇄 시대를 처음으로 개척했고 화보, 삽화, 사진 등 시각적 매체를 적극 활용하여 청소년 독자층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시기 기획된 10대 연재소설, 5대 연작단편, 5대 연재만화 등 ‘읽을거리’와 ‘볼거리’의 비중을 현저히 늘려 청소년의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킨 것도 폭발적인 독서열풍을 일으키는 데 기초 동력이 되었다. 창간호부터 실린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를 비롯해 김성환의 ?거꾸리군 장다리군? 등 한국 만화사에서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들이 <학원>의 지면을 통해 탄생하였다. 또한 조흔파의 대표작인 명랑소설 <얄개전>을 비롯해 <에너지선생>, <고명아들>, 최요안의 <해바라기의 미소>, 유호의 <키다리 봉식이> 등의 소설들은 대단한 인기를 얻으며 영화와 방송극 등 다양한 콘텐츠로 기획ㆍ유통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또한 <학원>에 실린 한낙원의 <금성탐험대>, 최요안의 <무지개꽃>, 과학ㆍ모험소설과 장수철의 <비밀극장을 뒤져라>, 김내성의 <검은별>, <황금박쥐> 등 공포ㆍ추리소설들이 1970년대 이후 청소년들의 대중적인 장르로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원세대의 문학과 청소년문학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학원문단’과 ‘학원세대’이다. 청소년들의 독자투고란인 ‘학원문단’은 청소년이 발화자이면서 동시에 수용자였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필담의 장이 되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청소년에게 ‘학원문단’은 마음 속 소통의 광장으로 기능하였다. 청소년들은 문단의 문우랍시고 꽤 편지를 주고받던 사이로 문학을 매개로 서로간의 소통을 욕망하였다. 제6회 학원문학상에 나란히 입상한 조해일(해룡)과 조세희(민홍)는 서로에게 편지형식의 입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해룡, 호콩이라도 씹으며 밤길을 걷자”로 시작하는 조세희의 편지는 친구인 조해일(본명 조해룡)에게 수상에 대한 감정을 전하고 있다. 조해일도 “세희, 난 지금 너에게 무엇인가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서 가장 절친했던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친구였던 조세희와 조해룡은 고2때 산문 부분에 함께 당선되었는데, 내면의 고통과 문학에 대한 관심, 학원문학상 당선으로 인해 쫓아다닐 불편한 시선들에 대해 서로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당시 청소년들은 작품을 발표한 학생들에게 펜팔을 보내기도 했고, ‘문학’에 대한 관심을 서로 편지로 주고받으며 소통의 창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학생들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전국의 청소년들과 소통에 대한 욕망을 ‘편지’와 독자투고를 활용해 해소하고자 하였다. 정호승은 1968년에 학원문학상을 탔는데 “당선되는 것도 좋았지만 당선소감 쓰는 게 더 좋았”다며, 당선소감을 쓰는 데 굉장히 신경을 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