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성 단편집

박화성 · 소설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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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석전야(秋夕前夜) 하수도 공사(下水道工事) 홍수전후(洪水前後) 호박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제강점기의 빈궁을 형상화한 동반자 작가 박화성의 작품집이다. 작품들에서 근대 초기 지식인 여성으로서 그녀가 가졌던 선각자적 자의식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박화성은 카프가 해산된 1930년대 후반에 객관 현실의 구체적 형상화로 전망이 부재한 식민지 조선의 빈궁(貧窮)을 탁월하게 그려냄으로써 그녀 특유의 소설 미학을 제시했다. 식민지 경제의 모순된 현실 등단작 <추석전야>는 ‘현실 폭로의 비애’가 특징이라 할 신경향파의 문학에 속하는 작품으로, 식민지 조선의 경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분노를 형상화하고 있다.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식민지 현실과 만나는 여성 노동자를 창조하였다는 점, 식민지 조선의 왜곡된 경제의 배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점, 그리고 금전에 대한 인식이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차원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문학적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데뷔작으로 꼽고 있는 <하수도 공사>는 일보 진전된 계급의식과 투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실업자 구제를 명목으로 목포에서 벌여진 실제 하수도 공사에서 소재를 취택해 일제의 조선인 착취 현실을 현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문제작이다. 김명순, 나혜석, 김원주 같은 1920년대 여성 작가들이 자유연애와 여성의 인권 문제를 문학작품 속에서 담론화하고 있다면, 1930년대 여성 작가 박화성은 추상적 자유연애의 대안으로 이념적 동지애를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산 생활감정’으로 빚어내는 ‘빈궁의 참맛’ 1930년대 후반은 일제의 파시즘 강화로 진보적 이념이 전반적인 침체기로 들어선 시기다. 1935년 카프가 해산되었으며, 대부분의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세태소설과 내성(內省) 소설로 침잠해 들어갔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박화성은 자신의 창작 방법의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모색에 들어갔다. <홍수전후>는 계급적 각성을 한 청년 윤성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는 김 선생 등 이른바 지식인 전위라 할 수 있는 지도적 인물 유형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이들은 주인공의 의식 변화의 조력자 역할에 맞게 소설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그 대신 윤성의 아버지, 봉건적 세계관을 가진 소작농 명칠과 35년 만에 닥친 홍수의 재난이 서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띄는 면모는 작가가 가난한 소작농의 생활에 밀착해서 그들이 겪게 되는 자연재해의 피해를 충실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우와 대결하는 명칠네 가족의 눈물겨운 사투는 그들의 가난과 처참한 현실을 극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홍수에 이어 가뭄까지 겹친 <한귀>의 처참함은 극에 달해 있는데, 작가는 이것을 무지한 소작농 아내인 성섭의 처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선량한 소작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성섭이 명칠과 같이 자각하지 못하는 인물 유형에 속한다면, 성섭의 처는 배운 바 없지만 치열한 현실 속에서 모순을 깨닫고 분노와 저항을 표출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고향 없는 사람들>은 앞선 두 작품의 최종편이라 부를 수 있다. 일제강점기 토지 수탈 정책의 파행적 운영에 따라 대다수 소작농은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에는 땅을 버리고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일용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고향 없는 사람들>의 삼룡의 가족은 그들의 팍팍한 삶을 대변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현실과 맞서려는 삼룡의 모습에는 추상적 이념으로서의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 끈질긴 생존의 의지가 발하는 강한 생명력이 투영되어 있다. 1937년 ≪여성≫에 실린 <호박>을 끝으로 박화성은 한글로 소설 창작이 어려워지자 일시적인 절필에 들어갔다. 박화성의 창작은 해방과 함께 다시 시작되는데, 동반자 작가로서의 그의 문학은 <호박>으로 일단락지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호박>은 <고향 없는 사람들>에서 삼룡의 친구 강판옥이 고무산 시멘트 공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와 동일한 소재를 음전과 윤수 두 청춘 남녀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로 바꾸어 명랑하게 그려내고 있다. 처절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넘겨낼 수 있는 음전의 건강한 웃음 속에는 암울한 현실을 담담히 감당해 내려는 작가의 옹골찬 의지가 내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