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포스터에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4일 전

5월 12일부터 23일까지, 세계 영화의 가장 중요한 무대 중 하나인 제79회 칸 영화제가 개최됐습니다. 칸 영화제는 한 해 영화계의 흐름을 시작하는 자리인 만큼, 그 분위기와 흐름에 맞추어 매년 공개하는 공식 포스터가 마치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요. 최근 10년 동안 공개된 칸 영화제의 공식 포스터, 그리고 의미 있는 스토리텔링을 더해준 작품과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 




2026 제79회 칸 영화제 

 

Photo by Roland Neveu, on the set of Thelma & Louise (Ridley Scott, 1991) © MGM Studios / Graphic design © Hartland Villa

 

리들리 스콧 〈델마와 루이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는 35년 전인 1991년 5월 20일,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영화 역사상 최초의 여성 주연이자 페미니스트 로드 무비의 두 주인공이었던 ‘델마’와 ‘루이스’는 삶과 사회, 그리고 그들을 학대하는 남자들로부터 도망쳐 나와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했는데요. 칸 영화제는 해당 포스터를 공개하며 성별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절대적인 자유와 변함없는 우정을 구현한 두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이미 걸어온 길을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또한 잊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2025 제78회 칸 영화제 

 

© Les Films 13 – A Man and a Woman, Claude Lelouch (1966) / Graphic design © Hartland Villa

 

클로드 를르슈 〈남과 여〉

 

칸 영화제가 역대 최초로 서로 다른 버전의 두 가지 공식 포스터를 선보였습니다. 1966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남과 여〉는 과거의 사랑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파리 출신의 두 남녀가 조심스럽게 새로 시작하는 감정적 교감을 그린 작품인데요. 해당 작품 속 두 존재의 찬란한 결합을 나타내는 이미지를 통해, 서로를 분리하고, 나누고, 억압하려는 시대에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몸과 마음을 더 가깝게 만들자는 의미를 포스터에 담았다고 합니다. 2022년과 2024년에 별세한 두 배우 아누크 에메와 장루이 트랭티냥을 추모하는 헌정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2024 제77회 칸 영화제 

 

© Shochiku Co., Ltd. – Rhapsody in August by Akira Kurosawa (1991) / Graphic creation © Hartland Villa

 

구로사와 아키라 〈8월의 광시곡〉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8월의 광시곡〉은 1991년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된 작품입니다. 영화 속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희생자인 할머니는 손주들과 미국인 조카에게 사랑과 정직이 전쟁에 맞서는 방어벽이라는 믿음을 따뜻하고 사려 깊게 전하는데요. 칸 영화제는 끊임없이 타자성을 문제 삼는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영화가 표현과 공유를 위한 보편적인 안식처이며 우리의 인간성과 자유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확신을 재확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습니다. 영화는 모든 이에게 목소리를 내도록 함으로써 해방을 가능하게 하고, 상처를 기억함으로써 망각에 맞서 싸우며, 위험을 증언함으로써 연대를 촉구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함으로써 삶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2023 제76회 칸 영화제 

 

© Photo de Jack Garofalo/Paris Match/Scoop – Création graphique © Hartland Villa

 

알랭 카발리에 〈샤마드〉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1968년, 알랭 카발리에 감독의 영화 〈샤마드〉(‘라 샤마드’는 프랑스어로 심장 박동을 뜻합니다) 촬영을 위해 해변에 서 있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카트린 드뇌브가 극 중 맡은 배역 ‘뤼실’은 세속적이고 피상적인 삶을 살지만, 안락함과 사치스러운 취향에 젖어있는 캐릭터인데요.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뛰는 뤼실의 심장은 마치 매년 칸 영화제가 기념하는 영화의 심장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포스터 속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타협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으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영화가 결코 잃지 말아야 할 본질, 즉 불가사의하고 대담하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2022 제75회 칸 영화제 

 

© Paramount Pictures Corporation – Jim Carrey, The Truman Show de Peter Weir / Graphic Design © Hartland Villa

 

피터 위어 〈트루먼 쇼〉 

 

피터 위어 감독의 1998년 영화 〈트루먼 쇼〉는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현실과 재현 사이의 경계를 경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허구의 힘, 조작과 카타르시스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트루먼’이 거짓에서 벗어나 위로 올라가듯, 붉은 카펫이 깔린 칸 영화제는 관객들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예술가들의 진실을 마주하게 하죠. 2022년의 칸 영화제는 짐 캐리가 연기한 ‘트루먼’처럼 세상의 극단적인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다시금 그 본질을 파악하려 했으며, 예술과 영화야말로 사색과 사회의 갱신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2021 제74회 칸 영화제 

 

Photograph of Spike Lee courtesy of Bob Peterson & Nike © All rights reserved Graphic design © Hartland Villa

 

스파이크 리 감독

 

2021년 제74회 칸 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인해 원래 예정된 5월에서 두 달 연기되어 7월에 개최됐습니다. 공식 포스터에는 해당 연도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감독 겸 배우 스파이크 리(Spike Lee)의 모습이 담겼는데요. 포스터에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반항하면서도, 결코 오락을 소홀히 하지 않는 스파이크 리의 장난기 넘치는 눈빛이 담겼죠. 모자에는 일반적인 나이키 로고 대신 칸 영화제의 상징인 황금종려상(Palme d'Or) 엠블럼이 그려져 있습니다. 칸 영화제는 역사상 최초로 흑인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된 스파이크 리가 ‘뉴욕 브루클린 인민 공화국의 시민’임을 강조하며, 칸은 ‘세계 영화의 인민 공화국’이라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2020 ‘스페셜 칸’ 

 

© Cannes Film Festival

 

2020년 칸 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경쟁 부문/황금종려상 없이 공식 선정작만을 발표했고, 가을에 ‘Cannes Special 2020’라는 이름으로 특별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영화제가 물리적인 형태로 개최되지는 못했지만 공식 선정작들은 ‘칸 스페셜’이라는 라벨을 달고 전 세계 극장에서 상영됐죠. 칸 영화제는 단순한 행사 자체가 아니라 영화와 관객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팬데믹 속에서도 사라질 수 없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화려함보다는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행위 자체가 부각된 사례였어요. 



2019 제72회 칸 영화제 

 

© Photo : La Pointe courte / 1994 Agnès Varda and her children - Montage & design : Flore Maquin

 

아녜스 바르다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2019년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에는 26세 아녜스 바르다가 첫 영화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촬영하던 현장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때 촬영한 작품은 1955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됐죠. 칸 영화제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며,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작품들을 기념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들이 영화제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같은 해 3월 타계한 아녜스 바르다를 추모하는 의미로 해당 이미지를 선정했습니다. 여성 영화감독이 아니라 그냥 영화감독이었던 아녜스 바르다는 그녀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으며, 칸의 해변을 내려다보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자리 잡을 포스터 속에서도 마치 등불처럼 영화제를 밝혔습니다. 



2018 제71회 칸 영화제 

 

© Design : Flore Maquin - Photo : Pierrot le fou © Georges Pierre

 

장 뤽 고다르 〈미치광이 피에로〉

 

장 뤽 고다르의 1965년 영화 〈미치광이 피에로〉는 일탈과 모험, 파멸로 이어지는 남녀의 이야기를 파격적이고 감각적인 영상미로 담아낸 작품인데요. 1968년, “세상은 혁명 중인데 영화제만 계속할 수 없다”며 칸 영화제를 중단시키는 데 참여했던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중에서도 반항과 충동, 자유를 담은 해당 작품의 이미지를 선정한 것은 칸 영화제가 자기 역사 속 반항과 영화적 자유까지 포용하겠다는 선언처럼 읽혔어요. 또한, 이 사진을 찍은 스틸 포토그래퍼 조르주 피에르는 누벨바그 현장을 기록한 전설적인 스틸 사진가였기에, 그의 작업들을 기리는 의미도 함께 담겼습니다. 



2017 제70회 칸 영화제 

 

© Bronx (Paris). Photo: Claudia Cardinale © Archivio Cameraphoto Epoche/Getty Images

 

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칸 영화제의 70주년을 기념하며 전설적인 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모험심 넘치는 배우이자 독립적인 여성, 그리고 사회 운동가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춤추는 장면에서는 기쁨, 자유, 대담함이 느껴지죠. 사진이 찍힌 1959년, 누벨바그와 이탈리아 영화의 황금기 속에서 스물한 살이었던 그녀가 거울 속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당당하게 서서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칸 영화제는 개방적이고 따뜻한 환영의 정신을 담을 것을 약속했어요. 포스터의 대표 색상인 붉은색은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와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2016 제69회 칸 영화제

 

© Lagency / Taste (Paris) / Le Mépris © 1963 StudioCanal - Compagnia Cinematografica Champion S.P.A. - All rights reserved

 

장 뤽 고다르 〈사랑과 경멸〉 

 

영화 제작 과정을 그린 장 뤽 고다르 〈사랑과 경멸〉은 많은 이들이 시네마스코프 영화 중 최고로 꼽는 작품으로, 영화사와 영화 애호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70주년을 앞둔 칸 영화제는 “영화는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욕망과 조화를 이루는 세계로 대체한다”라는 도입부 대사를 인용하며, 이처럼 겹겹이 쌓인 듯하면서도 명확한 상징성을 지닌 영화를 통해 영화사의 역사를 기리고 새로운 창작과 감상 방식을 수용하겠다는 창립 정신을 재확인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포스터 속 계단의 이미지는 영화 스크린이라는 무한한 지평선을 향한 일종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칸 영화제의 공식 포스터는 단순한 레트로 오마주를 넘어 ‘지금 시대에 왜 이 이미지를 다시 꺼내야 하는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어떤 작품들이 그 흐름을 이어가 줄까요?




지금, 아래 관련 콘텐츠를 통해 역대 칸 영화제 포스터에 담긴 작품과 인물들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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