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고쿠분 고이치로
3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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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쿠니야 올해의 인문대상 수상 도서. 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전개되면서, 사람들은 여유로워졌고 한가함을 얻었다. 그러나 한가함을 얻은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알지 못한다. 무엇이 즐거운 것인지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는 이 틈을 파고든다. 문화산업은 이미 만들어진 즐거움, 산업에 유리한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전 시대에는 노동자의 노동력이 착취되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노동자의 한가함이 착취되고 있다. 한가함의 착취는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힘이다. 왜 한가함은 착취되는 것일까? 인간이 지루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가함을 얻었지만, 한가함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모른다. 그 상태로 한가함 속에서 지루해지고 만다. 그러므로 제공된 즐거움, 준비되고 마련된 쾌락에 몸을 맡기고 안도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왜 인간은 한가함 속에서 지루해하는 것일까? 현대 소비사회가 인간의 소외를 불러오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 고통인 ‘지루함’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인류학, 고고학, 경제학, 소비사회론, 동물행동학을 비롯하여, ‘지루함의 최고봉’으로 꼽고 있는 하이데거와 수십 명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좇아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

Author/Translator

Table of Contents

머리말 서론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1장 토끼 사냥을 하러 가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원리론 파스칼이라는 인물 / 인간이 불행한 원인 / 토끼를 사냥하러 가는 사람은 토끼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 욕망의 원인과 대상 / 열중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 / 가장 어리석은 자 / 파스칼의 해결책 / 괴로움을 찾는 인간 / 니체와 지루함 / 파시즘과 지루함-레오 슈트라우스의 분석 / 긴장 속의 삶 / 러셀의 《행복론》 / 행복 속의 불행 / 놀랄 만큼 일치하는 러셀과 하이데거 / 지루함의 반대는 쾌락이 아니다 / 사람은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 열의? / 러셀의 결론이 가진 문제점 / 동양의 청년과 러시아의 청년들은 행복하다? / 열의가 가진 허점 / 스벤젠의 《지루함의 철학》 / 모두 똑같은 것은 싫어! / 스벤젠의 결론이 지닌 문제점 2장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졌는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계보학 지루함과 역사의 척도 / 인류와 유목생활 / 유목생활에 대한 편견 / 강제된 정착생활 / 정착과 식량 생산 / 유목생활과 식량 / 왜 1만 년 전, 중위도 지역이었을까? / 최근 1만 년 사이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 / 청소 혁명. 쓰레기 혁명 / 화장실 혁명 / 죽은 자와 맺는 새로운 관계 / 사회적 긴장의 해소 / 사회적 불평등의 발생 / 지루함을 피할 필요성 / 부담이 만들어낸 쾌적함 / 1만 년에 걸친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이라는 과제 / 유목생활자와 정착생활자에 대한 주석 / 정착혁명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주석 3장 왜 ‘한가한 사람’이 존경받을까?: 한가함과 지루함의 경제사 한가함과 지루함은 어떻게 다른가? / ‘한가한 사람’이 존경받았던 시절 / 유한계급과 소유권 / 한가로움의 과시 / 과시적 한가함의 쇠락 / 베블런 이론의 문제점 / 아도르노의 베블런 비판 / 베블런 VS 모리스 / 한가롭게 사는 기술을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품위 넘치는 한가함’ / 라파르그의 노동 찬미 비판 / 라파르그의 믿음 / 노동자를 이용해서 폭리를 취한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 포드주의의 혁신성 / 노동으로서의 휴가 / 그람시의 금주법 분석 / 관리받지 않는 여가? / “자신의 욕망을 광고회사로부터 배운다”-갤브레이스 / ‘새로운 계급’ / 일에 충실하기? / 포스트 포드주의의 여러 문제점 / 끊임없는 모델 교환을 강요하는 노동 형태 /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과 비정규직 4장 사치란 무엇인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소외론 필요와 불필요 / 낭비와 소비 / 인간은 무엇을 소비하는가? /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 / 낭비를 방해하는 사회 / 소비 대상으로서의 노동과 여가 / 〈파이트클럽〉이 그려낸 소비사회 / 타일러와의 만남 / 소비사회와 그에 대한 거부 / 타일러는 누구인가? / 현대의 소외 / 소외와 본래성 / 소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 루소와 소외 / 홉스의 자연상태론 / 전쟁 상태에서 국가 형성으로 / 루소의 자연상태론 / 이기심과 자기애 / 자연상태론은 어떤 도움을 주는가? / 본래성 없는 소외 / 마르크스와 노동 / 마르크스의 소외론은 어떻게 읽혔는가? / 소외론자들의 욕망 / 노동과 일-한나 아렌트 /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왜곡한 아렌트 / 마르크스에게 있어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5장 도대체 지루함이란 무엇인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철학 철학의 감동 / 기분을 묻는 철학 / 근본에 있는 기분 / 지루함의 두 종류 / 지루함의 제1형식 / 지루함은 무엇일까? / 기분 전환과 시간 / 〈붙잡힘〉 / 〈공허에 방치됨〉 /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느낌 / 기차역의 이상적 시간 / 지루함의 제2형식 / 기분 전환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 시가를 피우는 데 집중한 것이 아니라…… / 마침내 찾아낸 기분 전환 / 제2형식에서 ‘공허에 방치됨’과 ‘붙잡힘’ / 자라나는 ‘공허에 방치됨’ / 방임은 해도 방면하지는 않는 ‘붙잡힘’ / 제2형식에 의해 명확해지는 것 / 지루함의 제2형식과 인간의 삶 / 제2형식의 ‘정상적인 정신’ / 지루함의 제3형식 /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기분 전환 / 제3형식에서 ‘공허에 방치됨’과 ‘붙잡힘’ / 제3형식과 제1형식의 관계 / 제3형식과 제2형식의 관계 / 해방과 자유 / 6장 도마뱀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인간학 해바라기 중인 도마뱀에 대해 생각하기 / 어떤 대상을 그 자체로 경험한다는 것 / 돌/동물/인간 / 진드기의 세계 / 흡혈의 과정 / 세 개의 신호 / 환경세계 / 놀랄 만한 진드기의 능력 / 시간이란 무엇인가? / 베타의 시간, 달팽이의 시간 / 시간의 상대성 / 환경세계에서 본 공간 / 사물 그 자체? / 꿀벌에 대한 하이데거의 논리 / ‘압도됨’과 ‘얼빠짐’ / 도마뱀의 환경세계, 우주물리학자의 환경세계 / 천문학자의 환경세계 / 인간과 동물의 차이 / 맹인안내견을 통해 생각하는 환경세계 이동 / 환경세계와 지루함 / 지루해하는 동물 / 7장 결단하는 것이 인간임을 증명하는가?: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인간과 자유와 동물에 관한 하이데거의 생각 / 눈을 감고 귀를 막아라! / 결단의 노예가 되는 것 / 결단 이후의 주체 / 제1형식과 제3형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외의 관계 / 결단의 열차 여행 / 제2형식의 특수성 / 인간답게 산다는 것 / 코제브-역사의 종말, 인간의 종말 / 이미 다가온 역사의 종말 / 미국인은 동물 / 계속

Description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문학, 생물학과 의학까지… 수많은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현대 소비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길을 찾는다 “기노쿠니야 올해의 人文大賞 수상” 우리는 누군가에게 파티 초대를 받았다. 그렇다고 꼭 가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있었고 마침 저녁 시간도 비어 있었기에 가기로 했다. 격식을 차린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식탁에선 대화가 이어졌다. 음식은 입에 잘 맞았고 다른 모든 조건도 마음에 들었다. 식사가 끝나면 흔히 그랬듯 둘러앉아 음악을 듣고 농담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재미있고 유쾌했다.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부인들은 정말 즐거웠고 멋진 파티였다고 몇 번이나 확인하듯 말한다. 그저 인사치레가 아니라 배웅하러 문 밖에 나온 자리에서까지 정말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고 되풀이한다. 말 그대로 파티는 매우 훌륭했다. 오늘 밤 파티에서 지루했던 상황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대화도, 사람들도, 장소도, 어느 것 하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래서 흐뭇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와 저녁에 끝내지 못한 일을 얼른 살펴보고 내일 아침엔 무슨 일을 처리해야 할지 확인해본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 실은 오늘 밤 파티에서 무척 지루했어”라고.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고쿠분 고이치로, 198p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 하이데거, 182~183p 인간은 풍요로워지기 위해 애써왔다. 그 결과, 우리는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행복할까? 정말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가?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철학자들이 고심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파스칼, 러셀, 니체, 칸트, 하이데거, 마르크스, 아렌트, 아도르노, 들뢰즈 등의 철학적 논리를 차근차근 파헤치며 이러한 질문에 대답한다. 풍요한 사회에서 왜 지루해할까? 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전개되면서, 사람들은 여유로워졌고 한가함을 얻었다. 그러나 한가함을 얻은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알지 못한다. 무엇이 즐거운 것인지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는 이 틈을 파고든다. 문화산업은 이미 만들어진 즐거움, 산업에 유리한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전 시대에는 노동자의 노동력이 착취되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노동자의 한가함이 착취되고 있다. 한가함의 착취는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힘이다. 왜 한가함은 착취되는 것일까? 인간이 지루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가함을 얻었지만, 한가함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모른다. 그 상태로 한가함 속에서 지루해지고 만다. 그러므로 제공된 즐거움, 준비되고 마련된 쾌락에 몸을 맡기고 안도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왜 인간은 한가함 속에서 지루해하는 것일까? 현대 소비사회가 인간의 소외를 불러오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 고통인 ‘지루함’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인류학, 고고학, 경제학, 소비사회론, 동물행동학을 비롯하여, ‘지루함의 최고봉’으로 꼽고 있는 하이데거와 수십 명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좇아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끊임없이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원죄는 아닐까? 인간은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넘어오면서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사용할 일이 없기 때문에 능력까지 남아돌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여유분을 이용하여 문명을 세우고,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정착생활로 식량을 저장할 필요가 있었고, 이로 인해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사유재산은 사람들 사이의 격차를 만들어냈고 이는 곧 계급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이때 유한계급은 곧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허락받은 사람이었다. 하층계급은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벅찼고 한가하거나 지루해할 틈이 없었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힘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유한계급은 한가로움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를 대신해서 과시해줄 고용인을 두었다. 그들은 한가함을 과시하고 우아하게 지루함을 견뎌내는 방법을 알았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유한계급이 몰락하고 계급 격차가 줄어들었다. 이때부터는 한눈에 보이는 신분의 상징이 중시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하지만 제대로 된 사치는 부리지 못한다. 그리고 유한계급처럼 지루함을 견뎌내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가하지만 지루해한다. 노동하고 남는 여유 시간은 휴가라는 이름의 노동이 되었다.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분을 전환할 만한 일을 찾지만, 그 일에도 지루함은 숨어 있다. 이렇게 지루함은 인간에게 근원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저자는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이라 할 만한 지루함이 원죄와 마찬가지로 신에게서 주어진 것은 아닌가 하고 탄식한다. 어쩌면 인간은 지루함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소비는 소외를 불러온다 현대사회의 소외, 과연 자본만이 문제일까? 저자는 영화 〈파이트클럽〉을 예로 들어 지루함과 소외의 문제를 논한다. 일회용으로 가득 찬 생활환경에서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브랜드 가구를 사들이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다른 사람의 비극을 통해서나 위안받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타일러와 파이트클럽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감각을 느낀다. 타일러는 소비사회가 사람들을 억압하고 소외된 존재로 만든다고 한탄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주인공이 보기에 타일러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타일러 역시 소비사회에 의해 이용당하는 존재다. 소비사회의 거울 이미지로서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비사회의 소외는 이전의 노동자 소외와는 달리 누군가에 의해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형태로 작동한다. 그래서 소비자는 스스로를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가고, 스스로를 좀먹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소비사회의 만행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마르크스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소외된 노동에 대해 논하며, “궁핍과 외적 유용성에 의해 결정된 노동을 멈추고 자유의 왕국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유의 왕국은 노동 자체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일의 단축’에서 온다면서, 마르크스는 한가함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침에는 사냥을, 낮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소를 몰고, 저녁 식사 후에는 평론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결코 사냥꾼, 어부, 목동, 비평가가 되지 않는” 것이 한가함을 즐기는 기술이다. 마르크스는 누구든 한가로운 생활을 향유하는 ‘왕국’, 즉 ‘한가함의 왕국’이야말로 ‘자유의 왕국’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처음에 제시했던 파티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왠지 일어날 법한 상황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불가사의한 상황이기도 하다.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지루한 구석은 없었다. 그런데도 분명 지루해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일단 2가지 형식으로 나누고 각각 일상적인 예를 통해 설명한다. 파티의 예는 하이데거가 분류한 제2형식의 지루함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어떤 것에 의해 지루해지’는 수동적인 지루함이 제1형식의 지루함인데, 기차역에서 4시간 후에 오는 다음 기차를 하릴없이 기다리는 사람이 그 예라 할 것이다. 그리고 제2형식은 파티의 예처럼 ‘어떤 상황에 처하여 그 곁에서 지루해’지는 것이다. 이른바 지루함이 주위를 뒤덮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저자는 ‘지루함의 최고봉’이라 여겼던 하이데거의 철학을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분석해나간다. 그리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지루함’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다. 이 책에 ‘윤리학’이라는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