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우

Crimes and Misdemeanors
Avg 3.6
Sep 15, 2022.
모든 걸 굽어보고 심판하실 신의 눈은 어디에? (2022.09.16.) (스포를 무릅쓰고) 영화 쪼개기 - 이번에도 우디 앨런은 따분한 결혼생활에 이골이 나서 바람을 피는 역할이다. 클리프(우디 앨런)는 재수 없지만 잘나가는 프로듀서인 처남 레스터의 밑에서 같이 일하게 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고백해봤지만 여자는 사정이 있는 듯이 떠나가고 만다. - 알고 보니 처남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여자, '그는 나쁜 남자가 아니고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성공했고, 돈이 많은 남자죠' 하고 냉소할 뿐, 이제 그는 실의에 빠져 축 처진 채 앉아있는 것 외에 할 게 없다. - 그의 곁에 와 앉아서는,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실은 자기 이야기를 펼친 남자는 '로젠탈 박사(마틴 랜도)'다. 잘나가는 안과의사에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도 불륜을 저질렀다. - 그런데 내연녀가 더는 마음을 참을 수 없다며, 로젠탈의 부인에게 찾아가 담판을 짓겠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면 로젠탈의 학회 공금 횡령을 폭로하겠다고 나오자, 로젠탈은 청부업자를 고용해 내연녀를 살해한다. 죽은 여자의 집에 들어가 자신과의 관계를 보일 만한 증거까지도 말끔히 정리하고 나온 로젠탈은 수사망에도 들지 않는다. - 클리프가 '과연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자 로젠탈은 '심판 받는 엔딩을 바란다면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가서야죠' 하고 무심히 내뱉고 떠나간다. - 마지막 모습만 보면 냉혈한 같지만, 사실 로젠탈은 내연녀를 죽이라는 동생의 말에 굉장히 괴로워하며 차마 죽이지 못하겠다고 한 사람이다. 죽이고 나서도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껴 당장이라도 자수하러 가고 싶다고도 한다. 이건 그가 어렸을 적 유대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모든 것을 굽어 보시는 신의 눈'을 끝없이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가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내연녀를 죽였다는 것, 집에 몰래 들어가 증거를 없앴다는 것, 경찰이 왔을 때도 눈 깜짝 않고 모른 척 둘러댔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도 나중에는 합리화까지 했는지 더는 느끼지 않는다. 그는 신의 눈을 의식하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의 눈을 피해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으로 큰 것이다. - 결국 무기력하게 퍼져 앉아 있는 클리프를 뒤로 하고 로젠탈은 아내와 단란하게 사랑을 나누며 자리를 떠난다. 현세에서의 승자가 정해지는 씁쓸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우디 앨런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 클리프가 다큐로 찍고 싶어했던 원로 유대인 철학자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인간의 행복은 설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가족, 일처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라고 했었다. 얼마 뒤 '창문으로 나간다'는 짤막하고 볼품없는 유언만 남긴 채 그 철학자는 자살했다는 것도 포인트. 이쯤 되면 신은 없다. 인간끼리 심판하고 인간끼리 복작대며 살다 죽어가는 것. 그 안에서 행복은 셀프로 갖다 먹어야 하는 듯하다. - 이 작품의 메시지는 16년 뒤에 <매치 포인트>로 이어지는 듯하다. 만듦새나 이야기의 재미로 봤을 때는 <매치 포인트>가 훨씬 세련된 느낌을 주므로 못 본 이들에게는 그것도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