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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

GS

7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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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Were Never Really Here

Movies ・ 2017

Avg 3.6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원제는 'You Were Never Really Here'로 시제가 과거형이다. 과거형의 제목은 오프닝 타이틀의 공표 방식과 연결된다. 위험한 사건을 처리한 주인공 조(易와킨 피닉스)가 택시에 몸을 싣고 떠나는 장면에서 영화의 제목이 등장한다. 보통 영화라면 'You Were Never Really Here' 문장 전체를 페이드 인(FI)&아웃(FO)을 하는데, 이 영화는 한 단어로 끊어서 페이드 인하고, 다음 단어가 페이드 인하면 이전 단어는 페이드 아웃하는 방법으로 제목을 알린다. 그러니까 다음 단어가 등장하면 이전 단어는 사라져 문장이 완성되지 못한다. 이는 과거형의 제목과 상통하는 방식의 오프닝이며, 동시에 파편화된 조의 과거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하느님을 찬송하는 택시 기사를 통해 오프닝을 종교적인 레퍼런스{신은 여기에 없었다}로도 읽을 수 있다.) - 영화를 보고 나서 '너는 여기에 없었다.'라는 제목을 곱씹으면 결국 너는 조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는 과거가 된다. 모든 인간은 과거가 있기에 현재의 자신이 존재하는데, 조는 왜 과거를 부정하는 것일까. 왜 과거에 없었어야 하는가. 이 질문의 대답은 파편화된 과거의 플래시백으로 대신한다. 첫 번째 과거는 조의 엄마가 아빠에게 가정 폭력을 당해 두려움에 떠는 과거다. 그리고 두 번째 과거는 조가 군인 시절에 경험했던 참혹한 현장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과거는 아시아 소녀들의 몰살 현장을 목격했을 때다. 이 세 개의 과거가 공유하는 하나의 정서는 죄책감이다. 끔찍한 과거로부터 비롯된 조의 죄책감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머물지 않고, 현재의 삶에 연결되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 가정 폭력을 당하는 첫 번째 과거는 영화 <싸이코>를 보고 두려워하는 엄마로 변주한다. 영화가 무서운 늙은 엄마는 아들 조에게 본인이 잠들 때까지 옆에 있기를 부탁하고, 조는 과거의 엄마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함께 있는다. 조가 군 복무 했던 두 번째 과거는 조직에 살해당한 엄마로 변주한다. 본인이 건넨 초코바로 인해 소녀가 죽자, 괴로워하는 조의 죄책감은 엄마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소녀의 발바닥과 어머니의 발바닥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마지막 세 번째 과거는 길거리에서 아시아 소녀의 사진 촬영 요청으로 인해 다시 상기된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읊조리며 조는 계속해서 방황한다. -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조는 유일한 구원 방식을 자살이라 믿는 존재다. 하지만 조에게는 늙은 엄마가 아직 살아있고, 엄마가 죽은 후에는 니나(易예카테리나 삼소노프나)라는 소녀를 구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조는 자살하지 못하고, 대신 본인의 흔적을 없애려 한다. 여기서 조는 왜 니나를 필사적으로 구하려 하는가. 이는 니나가 조의 과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버지의 반인륜적인 행동으로 인해 끔찍한 과거를 겪었으며(겪고 있고), 살인과 자살로 부모를 잃었다. 조가 니나를 보며 느낀 감정은 측은한 마음을 넘어서 과거의 자신을 투영하기에 이른다. 조와 니나는 극 중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는 존재다. 카운트 다운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을 내뿜는 무력한 주문이자 기도로 기능하는데, 이들은 동질적인 의미에서 거울로 바라보는 자신과 같다. 아까의 문장을 번복하면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너'는 '조'뿐만 아니라 '니나'에게도 해당하는 셈이다. - 영화는 괴로워하고 분열하는 조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열차와 자동차가 카메라를 가로지르면 조는 사라지고(등장하고), 혹은 다른 각도의 컷을 넣어 이동했음을 암시하는 방식을 통해 환상과 유령에 가깝게 묘사한다. 또한 조가 니나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때, 카메라는 객관적 시점을 견지하며 감정을 배제하는 CCTV로 대신한다. 게다가 CCTV 화면을 교차로 편집하여 조의 특정 행위를 명확히 담지 않고, 의도적으로 조의 존재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또한 자신의 거주지를 알아버린 앤젤과의 거래 중지, 보스와 연락할 때는 반드시 음성메세지를 사용하는 행위(통화는 상대와 함께 하는 동시적인 행동이라면, 음성메세지는 일방적인 과거의 행동이다.)를 통해 과거와 흔적 삭제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 그런데 과거와 현재의 간극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교차하는 조의 존재가 하나로 접합하는 기묘한 순간이 절정-결말 부에서 등장한다. 조가 두 번째로 니나를 구하려고 침입한 호텔에서 플래시백으로만 틈입하던 과거가 명확한 실체처럼 구현되고, 니나가 스스로 구원에 성공한 모습을 목격하는 장면은 과거와의 간극을 접합하는 순간처럼 여겨진다. (이전 장면에서 조의 자탄과 눈물도 같은 범주에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마지막 식당에서 상상 자살을 하는 조의 상징적 청산은 과거를 잊고 아름다운 날을 시작하는 행위가 아닐까. - 영화의 결말을 새드 엔딩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영화는 녹색과 빨간색의 은유를 자주 사용한다. 녹색은 평화를 상징하는 색상이지만, 빨간색은 핏빛으로 가득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한다. 그런데 녹색 젤리를 좋아하지만 짓이겨버리는 조의 행동과 니나가 녹색 콩을 계속 먹는 장면은 연결되고, 이는 평화로운 내면과 세상을 바라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엔딩에서 조와 니나는 사라졌지만, 테이블에 계속 놓여있는 계산표와 흔적들은 너는 여기에 '없었다'가 아닌 '있었다'는 비극에 가깝다. 무엇이 됐든 영화의 결말 부는 매혹적이고 묘한 정서적 여운을 남긴다. -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과거의 기억을 제공하는 방식 자체가 매우 거칠어 영화가 불친절하게 느껴지지만, 이러한 영화의 문법은 조의 괴롭고 단편적인 과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거친 영화를 더욱 증폭시키는 것은 조니 그린우드의 신디사이저 음악과 조 역할을 맡은 와킨 피닉스의 미친 연기다. 이 영화의 일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 - https://blog.naver.com/rmatjdwjdals/221370986628 영화 공부를 하며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