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경
4.5

The Little Drummer Girl
Series ・ 2018
Avg 3.9
시오니스트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그 시오니스트가 팔레스타인 반군을 연기해야하는 덕에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특이한 구조다. 시오니스트에게 감정이입 하기을 권유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정치적 발언권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은 팔레스타인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가디가 "Fuck your sarcasm!" 소리친 이후에 대사를 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인데 그 쯤되면 그는 시오니스트인가? 단순히 연기에 몰입한 스파이인가? 그정도로 몰입했는데 단 한 번도 진심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이해한 적이 없단 말인가? 여러가지 궁금증과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고 그 주제가 찰리와 가디를 넘나들며 변주 반복되기 때문에 전쟁 뒤 신념이란 것의 공허함, 첩보 행위가 'art of technique' 으로만 남게될 때 전문 스파이들이 느끼는 직업적 고단함(?) 같은걸 느낄 수 있음. 그리고 이런 뒷면을 들추는 것이야 말로 존 르 카레 작업의 decency이자 미덕 아닌가. 모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지만 제일 좋았던 사람은 칼릴이다. 아직도 마지막 대사가 잊혀지지 않아서 오늘 하루종일 울적했다고. 원작에도 나올까, "이럴 가치가 있길" 원작에 없는 대사라면 진짜 차눅박... 박수 쳐드립니다. 물론 전체적으론 찰리와 가디가 훨 더 많은 시간을 보냈겠지만 칼릴을 '근사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그를 진심으로 존중하게 되는 감정의 플로우에는 전혀 이견이 없다. 왜냐면 이미 앞서 여러 대사들을 통해 그의 정치적 정당성을 쌓아 올려진 데다가 짧은 순간이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윤리적 측면에 대해 해명하는 기회를 주고있고, 가족과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인간적 매력이 입혀진 탓에 - 흔히 이런 종류의 첩보물들이 상대편을 입체적으로 그린답시고 너무 짧은 순간에 클루들을 몽땅 우겨 넣어 하나도 기억 나지 않게 보내버리는 것과 달리 살림-파메드-칼릴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으려고 한 노력을 읽을 수 있음. 일단 원작을 좀 읽어봐야겠지만. 덧붙여 플로렌스 퓨 연기 너무 잘한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좌절시킬만큼' 간단하게 해낸다고 하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알렉산더 역시 마찬가지, 그의 얼굴을 빌어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망설임이 아주 섬세하고 고통스럽게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