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Youth (Spring)
Avg 3.7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나의 포항 외할머니가 월스트리트 금융맨과 똑같은 갤럭시 알람에 깨는 시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속 주인공이 도박장에서 먹는 치즈버거와 똑같은 치즈버거로 나의 숙취를 해소할 수 있는 시대. 또한 생소한 산골짜기 출신의 타국 노동자가 만든 부품이 들어간 전화기로 우리가 사랑도 전하고 실연도 당하고 마지막 편지 같은 것도 쓰고 이력서도 제출하고 119에 전화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 이국의 청춘들이 옷을 만든다. 통속적인 발라드에 맞춰 흥얼거리고 누가 더 빨리 만드는지 시합도 한다. 절대 안 될 것 같은 짝사랑한테 개수작도 부리고. 밀도 높은 노동에 예민해져서 동료랑 터무니없는 몸싸움도 한다. 그 모든 게 각종 뒷주머니와 레이스에 한땀 한땀 박힌다. 누군가의 살갗에 몇 계절씩 닿아 있을 옷감에 저들의 청춘이 배어 있다. 개수작은 엉성해도 재봉틀을 다루는 손길은 엉성하지 않아서 그 날카로움에 베일 것만도 같고. 옥상의 빨랫줄에 널린 패딩과 이불 뒤에선 ‘인생이 걸린 일’에 관한 대화가 오간다. 두 사람만의 대화는 임신 중절에 관한 온 동네의 훈수로 번진다. 그러다가 물량은 제시간에 쳐내야 하기에 갑작스러운 중단. 쫄깃했던 썸도 그렇게 중단되나 싶다. 청춘이 그렇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도 태평하게 숨 쉴 폐활량이 남아돈다. 어색함 같은 것에 인색하지 않다. 천둥벌거숭이들. (면전에 대고 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심했잖아요. 그런 말을 하는 여자한테 그래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더 심하고요). 남이 뻐기거나 젠체하면 재수 없어 하고 본인 체면을 좀 구기는 건 괜찮다. 멋진 곳이다. 무시무시하지만. 쓰레기 처리를 제대로 안 해서 이웃들이 맹비난해도 아침을 먹으며 산들바람을 즐길 여유가 있다. 지난밤은 너무 즐거웠으니까. 그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다. 인생이라는 건 뭐가 많이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몰라서. 명절 때 고향에 가면서 “향수병 조심해!”라고 말하던 청년이 탄 버스의 뒷모습이 크게 남았다. 이제 이곳이 집이니까 고향 돌아가면 향수를 느낄 준비를 하라는 건지, 고향에 너무 마음 붙이고 오면 돌아와서 향수에 휘청일 것이란 말인지. 그의 능청스러운 표정으론 알 수 없었다. 여자들이 서로 치장해주는 장면도 좋았다. 서로를 꾸며주면서 각기 다른 머릿결과 피부, 얼굴형을 알아갔을 것이다.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친구들의 속눈썹을 말아주고 옷장을 순찰해주던 장면이 스쳤다. 이제 우리는 서른이라서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무언가를 입어보지 않아도 “나보다 너한테 더 잘 어울릴 옷이 있어,”라고 카톡을 할 수 있다. 영문 모르게 식은 연인에게 칭얼대는 남자를 보면서는 나에게 짜게 식었던 스무 살의 첫사랑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때 왜 그랬어?” “네가 Y랑 부산 여행 몰래 갔었잖아.” “걔가 그래? 같이 간 거 아니고 우연히 만났는데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같이 있다고 말을 못 한 거였어. 혼자 노는 척하면서 종일 너한테 연락했던 거 기억난다. 내가 그랬었네.” “나 그때 얼마나 상처 받았는데.” “나는 C 언니 생일 파티에서 네가 쌩까길래 울면서 일찍 집 갔던 거 지금도 생생해. 나 너 진짜 좋아했었잖아.” “내가 더 좋아했었지.”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요절 사인이 밝혀진 사랑. 그리고 떠오른 장면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재수 학원에 다니던 스물의 나. 내 얼굴 보려고 학원 다니는데 내가 아파서 못 오면 자기도 학원에 갈 필요가 없다던 문자. 내가 누운 침대 위에 걸린 빨랫감들. 화요일마다 학사 이모님들이 빨아주신. 어깨가 늘어나지 않도록 특이한 형태로 소매가 옷걸이에 걸쳐져 있던. 옷을 꼭 그렇게 널어주셔서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고 떠나올 걸. 영화는 조금 권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휴식의 장면에서 끝난다. 단가를 협상할 때 너무도 고압적이었던 사장 때문에 나는 노동자들이 부디 한 푼이라도 더 받아서 더 재미있게 놀길 바랐다. 더 깔쌈한 옷을 사 입고 더 맛있는 걸 먹길 바랐다. 저들의 휴식을 지켜보며 내가 생각한 더 나은 휴식이라는 것이 허상처럼 느껴졌다. 저들의 행복은 내 이해의 범위 바깥에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자신의 실익에 대한 파악이 잘 된 것 같은 청년은 말한다. 너무 한가로운 공장에서 일하면 에너지가 안 난다고. 빡센 곳에서 파이팅 넘치게 일하고 싶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청춘으로 포화된 이전 공장의 중독성을 알 것도 같았다. 알 것도 같은데 모르는 것도 같다. 그저 나는 앞으로 패딩이 따뜻하면 거기에 깃든 열기가 누군가의 청춘이라고, 박음질이 부족한 옷이 있으면 누군가가 무료한 일터의 재미를 찾고자 친구와 시합하느라 그런 것이라고 짐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