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드

A Swedish Love Story
Avg 3.7
한 거장의 데뷔작을 먼 훗날에 본다는 건 역시 결국 이후에 나오는 작품에서 드러난 개성과 스타일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떤 식으로 변하거나 발전했는가를 보게 된다는 점에 제겐 특별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지금 로이 안데르손의 영화를 얘기할 때 바로 떠오르는 특징인 잿빛 색깔의 톤과 전하고자 하는 것 이외엔 철저히 배제된 설정 등의 모습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어쩌다보니 로이 안데르손의 영화를 제작 시간 역순으로 보고 있는데, 한 예술가가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거꾸로 찾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지금 나오는 영화와 달리 넓은 공간에서, 힘을 줘서 찍은 장면과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삽입곡이 가득하고, 사랑으로 뜨겁게 불타는 청춘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감독 이름을 가려 놓으면 로이 안데르손이 만든 영화라 유추하기 어려웠을 법도 한데, 기본적으로 뜨거운 사랑을 그리고 있음에도 그 뒤에 깔려있는 잿빛 사회와 그 속에서 갈라져 계급화된 사람들이 만드는 불안과 긴장이 가득한 모습이 왜 그가 지금 이런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보면서 그의 스타일이 이렇게 된 것은 개성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이미 그런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이 기본적으로 밝은 면보단 흐릿한 면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이 영화를 접한 제게, 필모 전체에서 이 영화가 차지하는 지점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에 있습니다. 이 이후에 나오는 영화는, 물론 아직 <길리압> 같은 영화는 못 봐서 잘 모르지만 그를 제외하면, 이렇게 뜨겁게 타오른 마지막 불꽃 이후에 생긴 재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이 영화는 세상의 방해 속에서도 서로의 시선을 맞추고 육체적, 정신적 탐닉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듯한 작품이였습니다. 한번 보면 완전히 빨려들게 되는 독특한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멋드러지게 잘 찍은 바이크 씬이 눈과 귀를 매혹시키면서도 본질인 그 뒤에 깔려있는 사회에 대한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