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리틀 드러머 걸
Avg 3.6
평범한 배우이던 주인공을 스파이로 지명하고 잠입시키는 과정까지의 1부와, 주인공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과정의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개인적으로 많이 지루했다.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봐야 소설이 읽힐 것 같아 짧게나마 배경지식을 공부하고 봤음에도 등장인물들의 흥미진진한 공작이 나에게는 와닿지가 않는다. 분명 등장인물 저마다의 사명으로 이야기가 빈틈없이 진행되는 것은 맞는데 플롯을 지나치게 견고하게 쌓아가다 보니 이야기의 완성도는 전달되나 그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주인공 찰리의 동기도 마땅치 않고, 스파이물이다 보니 인물들의 호칭도 암호명과 본명이 바뀌어서 불러지니까 누가 누군지가 꽤 헷갈렸다. 찰리가 이스라엘 진영에 동화되는 과정이 작가의 기교보다는 현실적인 호흡으로 천천히 묘사되고, 작전의 세부사항까지 실제 잠입 작전을 설계하는 것처럼 세세하게 독자에게 전달되다 보니 이러한 느리고 촘촘한 호흡이 취향에 맞고 몰입이 된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번역투의 영향도 있는지 그러한 과정들이 지지부진하게 느껴졌다. 소설은 2부로 넘어가서야 직접적인 국면을 맞이하는데, 2부부터는 분량은 1부에 비해 길지는 않지만 조금 더 전개나 메시지가 본격적으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소설의 장점은 개인적으로 2부 부분에서만 오롯이 전달되었다.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의 끝없는 갈등, 그 갈등 사이에 놓인 선인과 악인을 가르지 못하는 흐리멍덩한 분계선. 철저한 미국인의 시점이나 이스라엘의 시점, 팔레스타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게 아닌 입체적인 시점으로 찰리와 동화된 독자에게 물음을 요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무참한 이데올로기의 한복판에 뛰어든 평범했던 개인인 찰리의 눈이자 독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들의 작전이 어떤 정답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소설은 독자를 작전의 일원으로 흡수시킨 뒤 폭탄의 타이머를 작동시킨다. 흥미롭던 중후반부에 비해 결말부의 힘이 약해지기는 하지만 이 평범하고 허망한 결말마저 작가가 의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거침없던 폭풍부를 지나 현실로 돌아온 우리에겐 더 이상 사상과 평화의 문제는 바쁜 현실 속에서 그저 한순간 지나가버리는 잊히기 쉬운 것들에 불과하니까.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지구 반대편의 학살과 분쟁은 국경이 아닌 또 다른 벽에 부딪혀 우리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사랑을 하고, 밥을 먹고, 현실을 즐기며 그들만의 세계에서의 치열한 공작을 감지하지 못한다. 전해지는 감상은 뜻깊지만 플롯의 완성도와 비례하지 못하는 개인적 흥미가 아쉽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을 용의는 있으나 지금 당장의 수확은 소설의 재미보다는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의 복잡한 역사를 소설 덕에 공부하게 되었다는 점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