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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뒤죽박죽

4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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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sthenic Syndrome

Movies ・ 1989

Avg 3.7

2021. 2/23 <무기력 증후군> 무기력 증후군을 월요일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어제 두번이나 보다가 골아 떨어지고 오늘 카페에 나와 남은 50분 정도의 분량을 마저 보았다.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물리적으로 눈꺼풀과 몸을 무겁게 만드는 피로감이 밀려온다. 여러 에피소드들 속에서 연속되고 반복되는 모티프들 가운데, 반복이나 변주이지만 비대칭의 느낌을 불러오는 요소들에 대해 막연한 의문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감옥-동물원 비유. “학교는 감옥과 같이 규율이 확실해야하지 동물원같아서는 안된다.” --> 이후 학교 내 직원들이 쫓겨난? 잃어버린? 강아지를 lost and found animal 센터에 찾으러 나서는 일이 벌어지는데, 유리창살 너머에서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동물/짐승 흉내를 내며 간접적으로(그러나 직설적으로) ‘동물원’ 비유를 긍정하던 학생들과는 다르게 유기동물들은 지치고 힘 없는 모습으로 비좁은 철제 케이지 안에 갇혀 있다. 남편 잃은 여자의 히스테리 (생에 대한, 생의 관성에 대한 분노) /// 중년 남자 교사의 피로감, 열차, 묘지, 죽음, 사진 /// 정지, 조각상 흉내 [1] 남편을 잃고 관을 땅에 묻은 후 방황하고,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사회의 암묵적 룰을 모두 깨부수며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는 여인. 종점에서 어디로도 가지 않는, 행선지 없는 버스를 타고, 거리의 행인들에게 불만스럽게 몸을 부딪히며 시비를 걸고, 갑자기 거리의 여자 행세를 하는가 하면, 남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의 잘못은 ‘살아있음(alive)’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녀를 위로하러 온 친지와 친구들을 매섭게 쏘아보며 쫓아내고, 남편이 묻힌 구덩이 속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가 묘지들 사이로 뛰쳐나간다. 묘지에 새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 그리고 스틸쇼트(일수밖에 없는) 사진들. (증명사진이거나 연인의 스냅숏이거나 가족사진이거나 등등-- 사진 테마는 이후 집에 앉아 혼자서 창밖을 내다보며 맨 빵을 뜯어먹는 동안에도 반복된다. 죽은 사람의 사진들 (위아래가 마구잡이로 뒤섞인)을 정리하는 누군가의 손과 빵을 먹다가 테이블 끝 쪽으로 유리잔들을 밀쳐 떨어뜨리는 여자. 그리고는 외투를 이불삼아 잠에 빠져들고 -- 일어난다. 직장에 사직서를 낸 후 다른 누군가를 충동적으로 유혹한다. 쫓아낸다. [1.5] 유리잔의 깨진 잔해들을 정리하고 창밖을 내다보면, 리프트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고 있는 여자 자신이 보인다. 꿈처럼 느리게 미끄러지다 땅을 내딛자 덜컹이고 출렁이는 리프트. 여자는 버스를 기다린다. 뒤에선 누군가가 그녀의 코트에 붙은 먼지들을 털어준다. 가볍게 인사하자 ‘천만에요, now you can go’라고 말하는 낯선 이. (여자는 삶의 희망, 따스함을 되찾은 것일까?) -- 그 말대로 여자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다. 방금 전 상황이 스크린에 다시 펼쳐지고 있다. 불이 켜진 극장, ‘남편을 잃은 여인’을 연기했던 여자는 배우로서 무대에 선다. 프로그래머가 그녀의 이력을 안내한다. “게르만, 소쿠로프, 무라토바 같은 거장의 영화들은 계속 얘기되고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출구로 우르르 빨려나간다. “뭐 이딴 영화가 다 있지? 내 삶도 피곤해 죽겠는데 이런 영화를 봐야하나?” 진행자는 관객들에게 가지 말라고 붙잡지만 나중에는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실소에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여배우를 위해 들고 나왔던 분홍 장미다발은 건네어지지 않고, 배우는 무대의 장막 뒤로 사라지려 하다가 다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보인 뒤에 퇴장한다. 동원된 듯한 군인들도 일어서서 출구로 나간다. [2] 2부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극장과 지하철역 건물 내부를 움직여다니는 거대한 군중들.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이들은 타인의 삶은 물론, 자신의 삶에도 무관심해보인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장면들을 피부로 그대로 전달하는 대중교통 시퀀스. 지하철 칸칸이 실린 사람들의 얼굴은 지문과도 같은 퍼스널리티가 아니라 피곤으로 동기화되어있다. 눈을 감고 어딘가로 실려가다가 문이 열리면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극으로부터 빠져나와현실의 현장감 (피곤과 삶의 노곤함, 무의미 그 자체) 속으로... 일방통행처럼 보이는 군중의 흐름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바닥에 누운 한 남자를 통해 영화는 2부로 이동한다. 고등학교 교사인 그 역시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고양이와 강아지,, 새 등의 동물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고, 생선장수가 있는 떠들썩한 시장풍경과 학교 수업시간이 교차한다. 조각상, 스틸 사진 속 얼굴들, 사람들이 ‘조각’을 흉내내는 게임이 열리고 있는 파티의 한 장면. 몸으로 다툼을 벌이는 사람들과 조각-회화 (누드화)를 흉내내는 인물들 교사의 꿈, 무력한 유기동물들의 얼굴 _ 잠에 빠져든 사람들 (“죽은거야?” “아니, 자는거야”)의 정지된 몸. = (정작 ‘죽은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 사물들 속에 파묻힌 채, 그들에 소속되고 싶지만, 카메라가 다가가면 몸을 움직이거나 눈을 깜빡인다. 장식품들.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 벽지의 무늬.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여학생 두 명과 영화 초반부의 할머니 세 명 (돌림노래 같은 것을 하며 인형을 들고 있다) - 대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말들이 물려 소음이 되어버리는 연출. / 음악 삽입. 트럼펫 연주. 정신병원 장면들 = 초반부에 언급되었던 뱀을 삼킨 남자. 뱀은 뼈가 없어서 엑스레이에도 감지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울과 무기력은 병명을 확정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는 병가를 받고 병원에 입원한다. 장미꽃을 들고와, 당신을 wake you up 해주겠다는 제자. =>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 커플같은 모습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 그럼 “우린 이제 뭘 하지?” --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다. 남자는 다시 잠에 빠져든다. 열차의 불이 다 꺼진채 어딘가로 멀어져 갈 때까지도... 소녀는 그를 몇 번 깨워보다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서로 귀찮기 때문에 불의에 눈감는 문제 --> 어느편이 선이라고 할 수 없이 고착되어 있는, 습관적 무기력증.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순환열차처럼 한방울의 슬픔이 모든 것에 스며들어있다. [[“몽타주의 구조 배후에는 어떤 트라우마적 사건이나 충격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무딘 백일몽 상태와 정신적 충격 상태 사이를 부유하는 영화 공격적인 여성과 수동적인 남성. Male nudity / 직접적인 욕설 (지하철 소음과 섞여들림) + 검열의 문제.]] + 맥베스는 양심을 져버리지 못한 채 살인을 저질렀기에 잠을 자지 못한다. 그러면 <무기력 증후군>에서 쏟아지는 졸음은 ... 운행이 종료된 열차에 누워 실려가는 인간의 육신. 능동이 아닌 수동. 긍정이 아닌 부정. 공격적인 여자의 분노와 수동적인 윤리와 지. -- 병리적인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영화로 그림/조각을 재연하는 것. 타블로 비방 스러운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