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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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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years ago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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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ili in Paris

Movies ・ 2018

Avg 3.8

'파리의 딜릴리'는 유럽, 그 중에서도 특히 파리의 전성기였던 벨 에포크 시대에 한 혼혈 흑인 소녀와 배달부 소년의 파리 도심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의문의 조직에 의해 어린 소녀들이 유괴되며 강도 사건이 매일 이어지는 흉흉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파리를 누비는 두 주인공은 가는 도중에 다양한 위인들을 만난다. 유괴된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모인 위인들에 의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가 실종된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애니메이션 스타일이다.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사진 합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포토리얼한 배경으로 그려내며, 벨 에포크를 여행한다는 느낌이 물씬 나도록 한 연출은 정말 훌륭했다. 여기에 입체감이 없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더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아마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접한 여러 분야의 대가들을 만난다는 점일 것이다. 과학, 예술,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위인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던 벨 에포크 파리라는 배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마치 당시 파리에 있던 위인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어설픈 스토리를 핑계삼아 어떻게든 이들을 억지로 우겨넣으려고 하는 전개는 정말 황당했다. 그래 퀴리 부인도 만나고, 파스퇴르한테 진찰도 받고, 에드워드 7세도 보고, 피카소한테 모델 제안도 받는 거 다 좋은데,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런 짓을 영화 내내하고 있으니 초반부만 지나면 너무 지루해진다. 저 당시 파리에 이~~~렇게 많은 위인들이 살았다고 자랑하는 모습에 나는 무엇을 느껴야한다는 말인가? 그 순간들을 이어줄 미스터리 이야기는 개연성이 없고, 주인공들은 캐릭터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성격과 깊이가 없으며, 심지어 성우 연기도 듣기 평가 녹음을 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억양으로 들려서 몰입하기 힘들었다.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없는데, 대체 무엇을 보고 이 영화에서 재미를 느껴야한다는 말인가? 르누아르나 로댕의 애니메이션 버전을 보고 "아, 나 저 사람 누군지 알아!"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며 내가 갖고 있는 역사 상식에 자위하라는 건가? 차라리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보며 해독 불가능한 폭발과 파괴의 연속을 보고 멋있다고 하는 사람의 감성에 더 공감할 수 있다. 적어도 폭발과 파괴는 시각적인 임팩트라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 모든 것 와중에 영화는 뜬금없이 페미니즘을 제창하기 시작하는데, 영화의 70퍼센트 동안은 전혀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그것으로 클라이막스를 빌드업하니 꽤 황당했다. 차라리 주인공인 딜릴리가 겪는 인종차별에 대해 좀 더 파고들거나 했으면 주제적 일관성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겉으로는 파리 자랑하고, 틈틈이는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막판에는 여성을 억누르지 말라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듣기 좋은 말을 마구 떠들어대는 헛소리처럼 들렸다. '파리의 딜릴리'에는 이야기도 없고 캐릭터도 없다. 주인공들과 미스터리 플롯은 위인 전시를 위한 인형들에 불과하고, 관객은 위인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위인의 애니메이션 버전을 본다는 것 자체로 박수를 쳐줘야한다. 그리고 막판가서야 갑자기 페미니즘을 외친다. 그렇게 나는 진심으로 이 영화를 싫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