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kong
4.5

In Water
Movies ・ 2023
Avg 3.2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에서 정처 없는 헤엄을 하는 물고기들. 그 사이에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길을 묵직하게 바라보는 바위처럼, 세상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 필요한 우리. 본능과 원시성을 잃어가는 흐릿한 세계 안에서 나는 바위같은 물고기가 되어, 나의 길을 찾으려 한다. 우린 항상 방황하며 자유를 갈구한다. 그렇지만 어딘가 마음속 깊은 곳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기분이 들곤 한다. 사회에서 자신의 삶이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는 배우를 하다 지친 석호는 영화를 찍고 싶어 한다. 돈(세속)은 딱히 원하지 않고 나를 진정으로 알며 이 공허한 기분을 충족해 줄 수 있는 명예를 얻고 싶어 한다.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누군가를 연기하지 않고 진정 나를 이해) 진지하게 구상해 보지만 남의 영화를 따라(누군가를 연기) 하는 것 같다고 계속 좌절하며,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과 타인의 길을 걷는 것 그 기로 사이에서 계속 서성인다. 이 과정을 겪으며 석호는 땅 위에서 공허한 자유를 외치는 이들에 지쳐 땅 아래를 보기로 한다. 바위처럼 눌러 앉으며, 처음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시간을 깊게 가지게 된다. 민희와 석호처럼, 땅 아래를 웅크려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과 승윤은 세상 속에서 연기하며 살아간다. 우리 주위를 맴도는 귀신(자신의 본능, 본성)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믿지도 않는 것 같이 말이다. 석호는 영화에 대해서 꾸준히 고찰하고, 본인만의 안식처를 찾기 위해 집값도 물어보고 한다. 다만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승윤은 석호가 땅 아래를 지그시 바라볼 때도 발차기를 하며, 몸을 가만히 두지를 못한다. 시종일관 어느 곳에, 내가 진정 있어야 할 곳에 정착하지 않으려 한다. 또 성국과 같이 바다를 보러 갔을 때에도 현실과 자유의 기로에 서 있는 성국은 귀신을 직접 마주하고 싸우기 위해서 바위 사이를, ‘땅 아래’를 걷지만 승윤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에게 감독과 귀신은 외친다. 이젠 정신을 차릴 때라고,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진정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는 이유의 본질은 바위 틈 깊게 박혀있는 쓰레기들에게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오랜 시간 박혀있고 자라나는, 사회의 절벽 속에서 잊혔던 기억의 잔해들을 마주하고 그를 주워 나의 쓰레기봉투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길을 몸소 시행하는 민희를 보고 석호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온다. 이때도 석호는 아직 나의 길을 걸을 준비가 덜 되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가고자, 누구에게 연기를 시키며 민희의 형상을 불러일으키고 싶어 한다. 승윤에게 연기를 시키지만 승윤은 민희가 아니다. 승윤 본인의 길이 아니다. 그때 석호는 무언가를 깨닫고 자신의 시야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야 속에서도 희미하게 자취를 감춘다. 무엇도 보이지 않는 희미한 물 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그를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서 들어간다. 이젠 사회의 유혹을 향한 도피가 아닌 물 안으로 깊이 들어가 나와 우리들의 부산물들이 담겨 있는 ‘물 안에서’ 나의 길을 찾으려 한다. 땅 위를 서성이거나,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마지막 강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그를 스스로 죽는다고 표현한다. 물 위로 나아가려는 허망한 발길질이 아닌, 물 안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사회적인 자살을 함으로써 나의 본질과 원시들이 희미하게 흩어져있는 물 안에서의 물아일체를 행하려 하는 것이다. 물고기들, 귀신, 삶 그리고 ‘자신’과의 조우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