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erkalo

Marketa Lazarová
Avg 4.0
May 29, 2023.
"무엇을 위해 복수를 하려 하는가? 우리로 인해 죄를 짓지 말게." 복수를 위해 찾아온 미콜라스에게 라자르가 하는 대사이다. 사실상 이야기 속 모든 비극은 복수에서 기인한다. 오프닝에서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의 이야기는 '당시의 기독교'만큼이나 혹독했던 어느 겨울에 일어난 일이라 말하며 귀띔하듯, 왕실과 코즐릭 가문은 각각 기독교와 이교도를 상징하며 영화는 이들의 계속되는 복수극을 통해 당시의 치열했던 세력 다툼을 은유한다. 그렇기에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긴 하나, 이를테면 야만적인 이교도로 인해 고통받는 기독교를 그린다거나, 혹은 그 안에서 신을 향한 구원과 믿음만을 갈구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시대극 <안드레이 루블료프>와는 느낌이 다소 다르다 할 수 있겠다.) 이는 납치당한 아들 크리스티안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주교의 흥분된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피와 복수로 점철된 이야기 속에서 영화는 가치를 다른 곳에 두고 있다. 그 주인공은 영화의 제목이자 가장 큰 수난을 겪는 인물인 마르케타이다. 오직 복수만이 행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마르케타는 유일하게 '용서'하는 인물이다. (영화의 초반부 라자르는 마르케타에게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 말한다. 한편 마지막에 그녀와 함께 살아남아 있는 떠돌이 사제 버나드도 잃은 것에 대해 복수하지 않는 인물이다.) 미콜라스는 라자르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녀를 아버지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갔으며 그녀를 강간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용서하고 그를 사랑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구절을 행한 것은 왕실의 기독교인들도, 코즐릭 파의 이교도인들도 아닌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적을 사랑한 인물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초반에 미콜라스와 아담에게 납치된 크리스티안이다. 그는 포로로 잡혀 있던 중 코즐릭의 딸 알렉산드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와 마르케타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크리스티안은 알렉산드라를 사랑했으나, 갈등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녀가 적의 딸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분노가 뻔하기 때문에 그는 사랑에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다. 왕실 세력이 코즐릭 파에 대한 공격에 성공한 이후 영화는 마치 환상 같은 장면을 통해, 높이 쌓인 시체 더미 곁에서,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의 외침 속에서 알렉산드라와의 사랑에 대해 갈등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던 그는 결국 그의 아이를 배고 있는 알렉산드라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반면 마르케타의 사랑은 어땠는가? 결말부에 이르러 그녀는 아버지 라자르와 재회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오히려 비난한다. 유일한 가족에게 버려질 위기 앞에서도, 그녀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후 찾아간 수녀원에서(그녀는 수녀원에서 지내기를 고대해 왔다는 대사가 초반부에 등장한다), 모든 남자는 헛되며 무의미하다는 기도를 들으면서도 그녀는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수녀원을 뛰쳐나와 죽어 가는 미콜라스에게 향한다. (수녀원을 나오기 전 마지막 대사가 특히 의미심장하다. 한편 그녀와 함께 나오는 것은 한 아이인데, 이는 앞서 등장한 사슴과 함께 그녀의 순수함을 뜻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죽기 직전의 그와 식을 올린다. 그녀는 가족도, 신앙도 전부 포기한 채 몸과 마음을 바친 사랑을 끝까지 고수한 것이다. (1부에서 코즐릭의 아내 카테리나가 어린 딸 드라휴즈에게 '스트라바'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통이 없으면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 한다. 사람이 용서보다 복수를 택하는 이유는 용서가 더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사람이 확신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고통을 택한, 용서를 택한, 확신을 택한 마르케타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있다. 잔인함에 사랑으로 싸웠고 의심에 확신으로 싸운 그녀야말로 가장 신의 가르침에 걸맞은 것이라고. 그녀가 보였던 순수함과 사랑, 용서와 확신이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것이라고. 영화는 내레이션을 통해 그녀가 이교도인 미콜라스의 아들과 기독교인 크리스티안의 아들을 건장하게 키워 냈다 말하며 끝을 맺는다. 그렇게 지독하게 싸웠던 서로 다른 세력이 그녀의 품 안에서 가족이 된 것이다. 이때 영화의 시작에 나왔던 이야기의 소개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략 이러한 맥락이었다. "이것은 우연히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딱히 대단하지 않다. (...)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기록되었는가? (...) 제아무리 오래된 이야기일지라도 현재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이 오래된, 우연히 전해진 마르케타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제 분명하게 새겨진다. 연출의 스타일에 있어서 빛의 활용과 클로즈업, 그리고 스펙터클에서 각각 드레이어와 베리만, 구로사와 아키라를 연상케 하지만, 누구보다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이 가장 떠오를 정도로 영화의 마치 영적인, 압도적인 영상미가 내내 경이롭게 느껴졌다. 특히 과감한 트래킹 숏과 시점 쇼트들, 그리고 몽환적인 음악이 빚어내는 진귀한 순간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