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a Lazarová
Marketa Lazarova
1967 · Drama/History/Romance · Czech Republic
2h 42m · R

Mikolás and his brother Adam rob travelers for their tyrannical father Kozlík. During one of their "jobs" they end up with a young German hostage whose father escapes to return news of the kidnapping and robbery to the King. Kozlik prepares for the wrath of the King, and sends Mikolás to pressure his neighbor Lazar to join him in war. Persuasion fails, and in vengeance Mikolás abducts Lazar's daughter Marketa, just as she was about to join a convent. The King, meantime, dispatches an army and the religious Lazar will be called upon to join hands against Kozlik. Stripped-down, surreal, and relentlessly grimy account of the shift from Paganism to Christianity.
Dh
4.5
혼란스럽고 타락한 세상 속 흑백 광시곡 고통을 모르는 자는 기쁨도 몰라 #dust of death #검붉은 피 #호소 #공허한 메아리
Jay Oh
4.0
권위의 역사, 그 틈새로 이야기가 보인다. A history of authority, with stories in between the seams.
Cinephile
4.5
1인칭 시점의 감각적인 움직임, 사운드·이미지의 의도된 불일치 및 몽환적인 음악 등을 통해 체코 뉴웨이브 특유의 오묘한 감각들을 여러 번이나 최대로 뽑아낸다. 특히 알렉산드라에 관한 크리스티앙이나 아담의 환상 시퀀스들은 여러모로 굉장하다.
신용규
3.0
타르코프스키적인 흑백의 영상미는 압권, 그러나 시대극은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정서까지 미리 공부하고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sendo akira
4.5
스스로 고결함이라는 정당성을 가지고자 각자의 신을 창조해내 서로 "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주장하던 억압하는 자와 피지배자들에 세속적인 유혈, 허영, 고통의 이미지로 점철된 흑백 시네마스코프 예술적 시퀀스의 신비로움과 병치되는 압도적인 혼돈마저 그렇게 오가며 절망만 남은 듯한 중세 인간사를 포착하는가 싶던 카메라는 하지만 종극엔 사신이 휩쓸고 간 아수라장에도 일말의 희망에 씨앗을 뿌려놓는 거룩함도 놓치지 않는다
Indigo Jay
4.0
체코의 프란티섹 블라칠 감독을 처음 만나다. 단평을 써두지 않아서 인용함. 꼭 다시 보고 싶다. >> 2024.6.22 재감상 “2년 넘게 중세의 삶을 강요당한 배우들과 치밀하게 준비된 현장은 먼 중세의 시공간을 눈앞의 경험으로 바꾸어 놓았고, 회화에 버금가는 영적이고 시적인 미장센, 화면 바깥에서 주문을 거는 듯한 나레이션과 자막." - 시네마테크서울 트위터 *2013.2.17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서 감상 이용철/유운성 평론가의 선택 Unseen Cinemas.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마르케타 라자로바> <마을을 위한 레퀴엠>/ <신밧드> <러브> <또 다른 길>. 2024.6.22 재감상
오세일
4.0
무척이나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떠올리게 하는 미장센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미장센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의 부분들은 모두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인상적인 여럿 에피소드들의 분절을 연속으로 덧대어 거대한 한 편의 대서사시를 빚어내었다면, <마르케타 라자노바>는 서사가 불투명하다. 이 영화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원작의 서사에 기대어, 이야기의 저변을 쌓을 시간에 차라리 이미지로 그 간극을 대체한다. 신화의 틈새에 끼어든 인류의 존망이라는 설정을 필두로, 흑백의 촬영에서 건져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의 극치로 똘똘 뭉친 영화의 자태를 선보인다. 분명히 현실의 이야기이지만 비현실(판타지)적인 정서가 앞서게 되는 이미지들의 향연은, 관객들에게 서사의 이해를 버리고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듯한 체험적인 감상을 요한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이제는 옛것이 된 신화의 이야기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폐쇄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영화가 지향하던 '서사<이미지'의 관습 역시 당연히도 한계효용의 법칙을 피해 갈 수 없다. 외팔이와 죽지 못해 늑대의 삶을 살아가게 된 자의 사연에는 ㅡ자국민이 아니라면ㅡ 체코의 역사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하고, 그 순간부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받던 이미지의 신비로움에서조차 흥미를 잃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러나 여전히 마법처럼 빛나는 이미지의 찬란한 자태가 시종일관 시선을 매혹한다. 만약 영화와 분절되어 이미지만 따로 떼어졌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눈길을 빼앗길 듯한 촬영의 압도감. 제3세계의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특정 지역의 풍경으로부터 솟아나는 독보적인 정서의 감흥만큼은 놀라운 성과다. 아무리 하나의 신을 숭배한다 하더라도 지상에 사는 인간들은 공동체의 각립에 따라 지향하는 신념이 분열되는 법이니, 오로지 각자가 신을 숭배하는 방식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여기고 나머지의 공동체는 이단으로 몰고 가는 이 행태 자체가 곧 지옥도와 다름없다. 그들이 말하는 금기의 사랑이라는 것 또한 한낱 인간들이 정해 놓은 하찮은 규율에 불과할 뿐, 그 규율을 깨고 실행하는 진실한 사랑이야말로 곧 신에게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신은 애처롭게 사랑을 원하는 그들을 끝내 인간 세계에서 구원해 주지 않으며, 관망하는 신에게 버림받은 그들은 영원히 지상에서 불명예의 존재로서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인다. 수녀원에서는 마르케타를 구원해 주겠다는 명목하에 그녀를 사랑에 빠뜨린 남자를 저주하기에 바쁘며, 인간의 믿음에 배반 당해 아끼던 어린 양을 잃은 양치기는 이내 새로운 가축으로 흑염소를 품는다. 종교가 곧 권력이자 무기가 된 부조리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
zerkalo
5.0
"무엇을 위해 복수를 하려 하는가? 우리로 인해 죄를 짓지 말게." 복수를 위해 찾아온 미콜라스에게 라자르가 하는 대사이다. 사실상 이야기 속 모든 비극은 복수에서 기인한다. 오프닝에서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의 이야기는 '당시의 기독교'만큼이나 혹독했던 어느 겨울에 일어난 일이라 말하며 귀띔하듯, 왕실과 코즐릭 가문은 각각 기독교와 이교도를 상징하며 영화는 이들의 계속되는 복수극을 통해 당시의 치열했던 세력 다툼을 은유한다. 그렇기에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긴 하나, 이를테면 야만적인 이교도로 인해 고통받는 기독교를 그린다거나, 혹은 그 안에서 신을 향한 구원과 믿음만을 갈구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시대극 <안드레이 루블료프>와는 느낌이 다소 다르다 할 수 있겠다.) 이는 납치당한 아들 크리스티안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주교의 흥분된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피와 복수로 점철된 이야기 속에서 영화는 가치를 다른 곳에 두고 있다. 그 주인공은 영화의 제목이자 가장 큰 수난을 겪는 인물인 마르케타이다. 오직 복수만이 행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마르케타는 유일하게 '용서'하는 인물이다. (영화의 초반부 라자르는 마르케타에게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 말한다. 한편 마지막에 그녀와 함께 살아남아 있는 떠돌이 사제 버나드도 잃은 것에 대해 복수하지 않는 인물이다.) 미콜라스는 라자르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녀를 아버지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갔으며 그녀를 강간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용서하고 그를 사랑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구절을 행한 것은 왕실의 기독교인들도, 코즐릭 파의 이교도인들도 아닌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적을 사랑한 인물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초반에 미콜라스와 아담에게 납치된 크리스티안이다. 그는 포로로 잡혀 있던 중 코즐릭의 딸 알렉산드라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와 마르케타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크리스티안은 알렉산드라를 사랑했으나, 갈등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녀가 적의 딸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분노가 뻔하기 때문에 그는 사랑에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다. 왕실 세력이 코즐릭 파에 대한 공격에 성공한 이후 영화는 마치 환상 같은 장면을 통해, 높이 쌓인 시체 더미 곁에서,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의 외침 속에서 알렉산드라와의 사랑에 대해 갈등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던 그는 결국 그의 아이를 배고 있는 알렉산드라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반면 마르케타의 사랑은 어땠는가? 결말부에 이르러 그녀는 아버지 라자르와 재회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오히려 비난한다. 유일한 가족에게 버려질 위기 앞에서도, 그녀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후 찾아간 수녀원에서(그녀는 수녀원에서 지내기를 고대해 왔다는 대사가 초반부에 등장한다), 모든 남자는 헛되며 무의미하다는 기도를 들으면서도 그녀는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수녀원을 뛰쳐나와 죽어 가는 미콜라스에게 향한다. (수녀원을 나오기 전 마지막 대사가 특히 의미심장하다. 한편 그녀와 함께 나오는 것은 한 아이인데, 이는 앞서 등장한 사슴과 함께 그녀의 순수함을 뜻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죽기 직전의 그와 식을 올린다. 그녀는 가족도, 신앙도 전부 포기한 채 몸과 마음을 바친 사랑을 끝까지 고수한 것이다. (1부에서 코즐릭의 아내 카테리나가 어린 딸 드라휴즈에게 '스트라바'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통이 없으면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 한다. 사람이 용서보다 복수를 택하는 이유는 용서가 더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사람이 확신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고통을 택한, 용서를 택한, 확신을 택한 마르케타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있다. 잔인함에 사랑으로 싸웠고 의심에 확신으로 싸운 그녀야말로 가장 신의 가르침에 걸맞은 것이라고. 그녀가 보였던 순수함과 사랑, 용서와 확신이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것이라고. 영화는 내레이션을 통해 그녀가 이교도인 미콜라스의 아들과 기독교인 크리스티안의 아들을 건장하게 키워 냈다 말하며 끝을 맺는다. 그렇게 지독하게 싸웠던 서로 다른 세력이 그녀의 품 안에서 가족이 된 것이다. 이때 영화의 시작에 나왔던 이야기의 소개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략 이러한 맥락이었다. "이것은 우연히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딱히 대단하지 않다. (...)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기록되었는가? (...) 제아무리 오래된 이야기일지라도 현재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이 오래된, 우연히 전해진 마르케타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제 분명하게 새겨진다. 연출의 스타일에 있어서 빛의 활용과 클로즈업, 그리고 스펙터클에서 각각 드레이어와 베리만, 구로사와 아키라를 연상케 하지만, 누구보다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이 가장 떠오를 정도로 영화의 마치 영적인, 압도적인 영상미가 내내 경이롭게 느껴졌다. 특히 과감한 트래킹 숏과 시점 쇼트들, 그리고 몽환적인 음악이 빚어내는 진귀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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