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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오세일

1 year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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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a Lazarová

Movies ・ 1967

Avg 4.0

무척이나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떠올리게 하는 미장센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미장센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의 부분들은 모두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인상적인 여럿 에피소드들의 분절을 연속으로 덧대어 거대한 한 편의 대서사시를 빚어내었다면, <마르케타 라자노바>는 서사가 불투명하다. 이 영화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원작의 서사에 기대어, 이야기의 저변을 쌓을 시간에 차라리 이미지로 그 간극을 대체한다. 신화의 틈새에 끼어든 인류의 존망이라는 설정을 필두로, 흑백의 촬영에서 건져낼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의 극치로 똘똘 뭉친 영화의 자태를 선보인다. 분명히 현실의 이야기이지만 비현실(판타지)적인 정서가 앞서게 되는 이미지들의 향연은, 관객들에게 서사의 이해를 버리고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듯한 체험적인 감상을 요한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이제는 옛것이 된 신화의 이야기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폐쇄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영화가 지향하던 '서사<이미지'의 관습 역시 당연히도 한계효용의 법칙을 피해 갈 수 없다. 외팔이와 죽지 못해 늑대의 삶을 살아가게 된 자의 사연에는 ㅡ자국민이 아니라면ㅡ 체코의 역사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하고, 그 순간부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받던 이미지의 신비로움에서조차 흥미를 잃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러나 여전히 마법처럼 빛나는 이미지의 찬란한 자태가 시종일관 시선을 매혹한다. 만약 영화와 분절되어 이미지만 따로 떼어졌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눈길을 빼앗길 듯한 촬영의 압도감. 제3세계의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특정 지역의 풍경으로부터 솟아나는 독보적인 정서의 감흥만큼은 놀라운 성과다. 아무리 하나의 신을 숭배한다 하더라도 지상에 사는 인간들은 공동체의 각립에 따라 지향하는 신념이 분열되는 법이니, 오로지 각자가 신을 숭배하는 방식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여기고 나머지의 공동체는 이단으로 몰고 가는 이 행태 자체가 곧 지옥도와 다름없다. 그들이 말하는 금기의 사랑이라는 것 또한 한낱 인간들이 정해 놓은 하찮은 규율에 불과할 뿐, 그 규율을 깨고 실행하는 진실한 사랑이야말로 곧 신에게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신은 애처롭게 사랑을 원하는 그들을 끝내 인간 세계에서 구원해 주지 않으며, 관망하는 신에게 버림받은 그들은 영원히 지상에서 불명예의 존재로서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인다. 수녀원에서는 마르케타를 구원해 주겠다는 명목하에 그녀를 사랑에 빠뜨린 남자를 저주하기에 바쁘며, 인간의 믿음에 배반 당해 아끼던 어린 양을 잃은 양치기는 이내 새로운 가축으로 흑염소를 품는다. 종교가 곧 권력이자 무기가 된 부조리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