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
한때 잠시나마 만화계에 발 슬쩍 담궜던 사람으로서 제발 이런 식으로 원작 만화를 개무시하는 저급한 영상화를 우리나라에서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졌으면 싶을 정도다. 궁, 꽃보다 남자, 오렌지 마말레이드, 밤을 걷는 선비, 치인트 등 숱한 만화 원작들을 영상화할 때 원작에 대한 존중과 이해 없이 원작의 캐릭터성과 스토리를 무시하고 그 백배로 유치하게 만든 건 제작진이건만 오글거린다는 욕을 먹을 때마다 제작진들은 뻔뻔하게도 원작이 만화라서 그렇다고 변명하곤 한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캐스팅 싱크 이런 건 차치하더라도 스토리랑 연출 개떡같은 건 왜 고칠 생각이 없는지. (팬들도 앞으로 제발 만화 드라마화 될 때 배우 캐스팅만 신경쓰지 말고 감독과 작가 누군지 유심히 챙겨봤으면 좋겠다.) 하백의 신부 영상화가 결정된 건 8~9년 전인데 그간 도대체 뭘 준비한 건지 모르겠다. 스핀오프라서 원작과 다르다는 개소리도 집어치워. 스핀오프물도 원작과의 연계성이 보여야 하는데 이건 하백의 신부 제목만 따온 희대의 괴작이고 제작진은 윤미경 작가에게 머리 박고 사과해야 한다. 같은 배트맨 만화를 읽고도 혹자는 배트맨과 로빈이라는 괴작을 만들어내는 한편 혹자는 다크나이트 삼부작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낸다. 사실 다크나이트에서의 배트맨, 조커, 베인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이미 만화 원작에 충분히 그 캐릭터성이 녹아들어 있었는데 어떻게 저런 양 극단의 영화들이 나왔는지를 우리나라 제작사들은 깊이 고민해보길 바란다. 난 그게 원작에 대한 이해와 애정 내지 존중이 있었는지의 여부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난 우리나라에서 미생과 송곳 외에는 배트맨과 로빈 꼴 나지 않은 만화 영상화 작업물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특히 순정만화들은 느와르물에 비해 더 홀대받는다. 마치 순정만화는 작품이 아닌 것처럼. 하백의 신부가 스토리 면에서 완벽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독자들이 아끼는 핵심적인 캐릭터 특징들과 비주얼적 재미는 충분했다. 원작 작가인 윤미경 작가는 레일로드로 등단한 이후 거의 혼을 갈아넣는 노력을 통해서 작화를 개선했고 하백의 신부를 만들어낸 노력파다. 제작진은 제대로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개무시한 듯한 원작의 페이지 하나를 그리는 데에는 최소한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걸리며, 작가의 시간과 노력과 애정이 페이지마다 스며들어있다. 최소한 원작을 존중했더라면 짧은 머리에 동양 복식을 입는 하백을 파란 미역머리를 한 이집트 파라오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고, 저주에 걸린 몸 때문에 고뇌하는 신의 모습을 최대한 반영했을텐데. 제작진이 과연 하백의 신부 겉표지라도 보고 만든 건지 의심스럽고 제작진은 단체로 엿먹었으면 좋겠다. 별점에 0점이 없어 관심없어요로 대체한다.
128 likes5 repl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