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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엠

연엠

6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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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기

Books ・ 1984

Avg 4.2

이 시집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줬는데, 친구는 좋아라 하면서도 "내가 시를 잘 몰라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전에도 다른 사람에게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였다. 시를 잘 몰라서, 라며 어려움과 거리감을 토로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윤동주가 미워지곤 했다. 순수한 시를 쓴 걸로 모자라 사회상까지 담아버리는 무시무시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교과서주의자•입시주의자들에게 국어문제용 도구로 선택되었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시는 파헤쳐서 이해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뇌리에 콱 박아넣게 했으니까. 물론 잘못은 윤동주가 아니라 교과서주의자•입시주의자들에게 있다. 나는 좋아하는 시가 있는 페이지를 펼쳐서 보여주고는,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돌아와서 어땠냐고 물으니까 그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쑥쓰럽게 웃었다. 난 그냥 이 구절이 좋아서 이 시를 좋아해. 멋지지 않아? 라고 떠봤다. 이런 영업 방식은 통할 때가 있고 통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내 편견에 따르면 대체로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에겐 통하지 않았다. 일 년에 서너 권 정도만 읽어도 통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내가 추천해 준 문장을 읽더니 고개를 적당히 끄덕였다. 영업 실패였다. 이 잔혹한 이해와 해제의 시대에는 도무지 편안함이라는 게 없다. 온 사회를 긴장으로 위축시키는 주범 중에는, 시를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어 박탈해버린 학창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비중으로. 검색창에 '윤동주 서시' 따위를 적어 넣으면 자동완성으로 '해설' '분석' 따위가 따라붙는 사회는 도저히 제대로 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세상에 예술마저 이해해야 하는 사회라니, 그런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스칠 때면 종종 섬뜩하다. 최승자의 시가 '이해가 필요없는 방식으로' 교과서에 실린다면. 그런 학창시절을 보낸 시대의 사람들은 좀 더 편안한 방식으로 대화와 소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그런 시대를 살지 못해서 약간 아쉬웠다. 그런 이유로 유난히 먹물향 짙었던 정과리의 해설은 읽는 둥 마는 둥 넘겼다. 어떤 기적이 일어나 교과서주의자•입시주의자가 몰락한다면, 사람들에게서 시를 박탈하는 다음 적은 아마도 시인들이 될 것이다. --- 나는 피해 가고 싶지 않았다. 그 구덩이에 내가 함몰된다 하더라도 나는 만져 보고 싶었다 몇 천 년 전부터 다만 헛되이,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기 위하여.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우연히 발을 잘못 디딜 때 터지는 지뢰처럼 꿈은 도처에서 폭발한다.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두드려라, 만에 하나 열릴지도 모르니까. 두드려라, 안 두드리면 심심하니까. 간혹 너무도 길고 지루한 밤에는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언제나 불발의 혁명을. 거두절미하고, 밤이 온다. 반신불수의 밤, 그러나 영혼불멸의 밤 실체 없는 꿈의 실체 있는 이자를 받기 위하여. 이런 게 삶인 줄은 몰랐다고 말하지 말자. 서른 세 살 나이에 그렇게 말한다는 건, 범죄 행위다.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江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살아 있는 자들은 그래도 하루의 양식을 즐길 것이며 살아 행복한 자들은 두 번째 아이를 만들리니 안개의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며 마침내 나는 그를 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내 애인은 太平洋처럼 누워 있다. 이윽고 내 애인의 꼬리가 고요히 남실거리기 시작한다. 한 經典이 무너지며 또 한 經典을 세우며…… 이제 그대가 내 적이 아님을 알았으니, 언제든 그대 원할 때 들어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