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갈준
2 years ago

성
Avg 4.0
…어느새 윤곽이 가물거리기 시작한 성은 여느 때처럼 조용한 모습 이었다. K는 아직 한 번도 거기서 사람 사는 기척을 느낀 적이 없었 는데, 이렇게 멀리서는 전혀 뭘 알아볼 수 없는데도 두 눈이 욕심을 부려 정적을 가만두려 하지 않는 듯싶었다. 성을 보면 누가 가만히 앉아 앞을 바라보는, 그렇다고 생각에 빠져 모든 것과 단절된 게 아 니라 마치 보는 사람도 없이 혼자 있다는 듯 자유롭고 무심하게 보 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더러 있었다. 어떻든 누가 K를 보고 있음은 분명했지만 성은 조금도 평정을 잃지 않았으며 - 그게 원인인지 결과인지 모르지만 -관찰자는 눈길을 그대로 놔두지 못하고 슬그 머니 딴 데로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인상은 일 찍 찾아든 어두 움 때문에 오늘 더 강해졌는데, 그가 오래 보면 볼수록 더욱 알아볼 수 없었으며 모든 게 어둠 속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p.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