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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V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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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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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둑일기

Books ・ 2024

Avg 4.0

[영화도둑일기]는 ‘해적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 적법한 절차 바깥의 방법으로 영화를 보는 방식이죠. 하지만 여기에서 다루는 것은 최신 상업영화들을 배포하는 ㄴㄴㅌㅂ 같은 곳이나 여러 웹하드, 혹은 대형 배급사를 끼고 유통되는 소위 아트버스터(ex. 칸 영화제 작품들)의 유출을 중점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토렌트부터 시작해 텔레그램, 비공개 트래커 사이트 등을 통해 시네마테크나 공공 아카이브 등에 잠들어 있는, 혹은 현대미술 전시나 영화제 등을 통해서만 공개된 정전/실험영화 따위의 유출, 유포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특히 여기엔 제작사/배급사의 게이트키핑에서 영화를 ‘해방시키는’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죠. 김대중 정부 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기 전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들을 접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봉준호나 박찬욱 세대 즈음의 ‘시네필’들은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접했을 여러 일본의 대중문화 위에서 탄생했을 것입니다. 또 지방의 시네필들은 어떻습니까? 소위 말하는 ‘오프라인 인프라’의 구축 정도 때문에 수도권-지방은 합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 자본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때 문화적 민주주의를 이륙할 수 있는 또다른 수단이 해적질이기도 하죠. [영화도둑일기]는 우리가 합법적으로 누리는 소위 ‘양지’마저 이런 해적질에서 자유롭지 못함도 언급합니다. 책의 본문에도 언급이 돼 있습니다만, 영화비평가들 또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시네필들의 해적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입수하기도 합니다. 이 불법적 입수는 자연스럽게 ‘기획전’이나 ‘비평’ 등의 형태로 양지에 그 작품들이 소개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특히 온라인 상영이 확산됐던 코로나 전후로 이런 해적의 시대가 부흥을 맞이하면서, 양지/음지의 불가분성은 더 커지기도 했죠. [영화도둑일기]는 이런 해적질을 그렇다고 마냥 옹호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적들의 목표가 항상 인류 문화-영화사를 위한 어떤 숭고함이 아니라, 이미지에 천착하는 디지털 호더(horder)적인 성격이 있음을 꼬집고, 이런 수집(혹은 약탈)의 행위가 항상 시청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추출 가능에 대한 안도감에 그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상적 환경(ex. 영화관 상영, 넓게는 합법의 영역이기도 하겠죠)에 천착하며 관람을 미루는 것은 칼뱅주의적 자기처벌”이라는 마이클 시신스키의 발언을 가져오기도 하고, 해적질을 제하면서 영화사를 논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미싱 링크를 수반하게 됨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도둑일기]는 ‘불법’이란 납작한 언어로 해적질을 재단하기보단, 영화사-영화비평의 아카이빙 혹은 정전 수립의 과정에 있어서 이런 해적질이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또 병리적 상태에 가까워 보이는 이런 해적질을 향한 시네필들의 기저에 무엇이 원동력으로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는 저서로 봐야 합니다. 해적질의 영역은 ‘불법’이란 재단으로 인해 그 존재가 분명하고,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음에도 항상 음성적으로 언급돼 왔습니다. 하지만 [영화도둑일기]의 작업은 그런 해적질의 영역을 구체화하고, 일련의 중심 인물 몇 명을 인터뷰하면서 굉장한 재미를 선사하고, 재미를 넘어선 큰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결국 [영화도둑일기]는 우리가 문화를 향유하는 것의 의미를 되짚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영화의 경우 그 제작 규모 때문에 자본이 많이 투입되고, 그로 인해 작품의 권리/이익에 있어 창작자나 현장의 노동자보다 기업이 더 큰 영향력과 권한을 갖는 현실 속에서 이런 ‘해적질’이 갖는 사회주의적-민주주의적 의미를 고민해 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영화도둑일기]의 논지나 해적질의 세계에 대한 시각이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이 세계를 (특히 제도권 비평가나 소위 업계인이 아닌 일반 애호가의 시선에서) 이렇게 드러낸 (혹은 들어낸) 작업이 있었는지 돌이켜 본다면, 이만큼 귀중한 저서도 드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