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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인 투쟁들에 대하여. . . (스포일러) 마치 페이크다큐처럼 보이는 흑백의 영상들로, ‘블랙 클랜스맨’은 현실과 영화를 교묘하게 엮으며 포문을 연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수직으로 내려찍는 부감의 숏 아래 등장하는 주인공 론(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모습이다. 많은 영화들에서의 부감 숏이 그렇듯이 ‘블랙 클랜스맨’의 부감 숏 역시 인물의 낮은 지위나 좋지 못한 현 상태를 수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론의 낮은 사회적, 인종적 지위는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처음 입사하여 상관에게 듣는 질문은 인종차별적인 질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이고 주어진 업무는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기록보관소에서 잡일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사상이 만연한 곳이지만 론은 체제에 단순히 순응하는 인물이 아니다. 물론 론이 후에 만나게 되는 패트리스(로라 해리어)만큼 저항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론의 성격을 볼 수 있는 대목은 초반부터 존재한다. 론의 상관과 초반부터 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동료가 두꺼비라 지칭되는 흑인인물 하나를 찾아 달라 말할 때, 론은 그가 누군지를 알면서도 굳이 두꺼비라는 사람은 없다고 부언하며 맞선다. 본인에게 아니꼽게 다가오는 동료의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비하의 의도 없이 말한 상관의 말에도 론은 부정적인 표정을 지었던 것일까. 이유는 론은 흑인이 대상화되는 현실에 저항감과 거부감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좀 더 진행되면 분명해지는 사실이지만 론은 흑인들의 폭력적인 대항엔 의문을 품을 지라도 대항의 원인을 제공한 백인들의 차별에는 반기를 드는, 그런 인물이다. 말하자면 폭압적인 현실에 최대한 비폭력적으로 응수하려는 면이 있는 인물이랄까? 아무튼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 론이 콰메 투레의 연설에 잠입수사를 하는 장면이 지나면 영화의 전제는 완성된다. 완성된 전제는 다음과 같다. “백인은 흑인을 차별하며 흑인은 이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아래 론은 적극적인 투쟁을 망설인다. 허나 앞서 말했듯 론은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저항감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론은 본인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수치스러워 하지는 않으나 본인이 흑인이라는 대상이 아닌, 론 스타워스라는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대상에서 주체를 염원하는 그가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이러니 하게도 본인 대신에 남을 본인으로 위장시켜 잠입시키는 전략이다. . 유대인으로 보이는 플립(아담 드라이버)이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한 폭 넓어진다. 주인공 론을 제외하면, 그 전까지 우리가 본 극 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단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콰메와 패티리스를 필두로 한 흑인집단은 폭력이 동원되더라도 적극적인 투쟁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백인들을 적으로 생각하고, 반대 측의 kkk집단은 백인우월주의에 물들어 백인 외의 모든 인종들을 적으로 생각하며 남몰래 테러를 도모한다. 이러한 양극단의 대립에서, 스파이크 리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어느 한 극단에 서있는 인물이 아닌, 대립선상에서 어쩔 줄 몰라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도의에 대해 궁리하는 론과 아예 이러한 대립선상에 관심이 없는 필립이다. . ‘블랙 클랜스맨’은 겉보기에 악의 세력에 맞서는 강력한 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영화에는 필연적으로 관객에게 영화가 내세우는 정치적 선동에 불편함을 느끼게 할 요소가 다분하다. (영화의 감독 스파이크 리가 인터뷰에서 “꼭 트럼프가 봤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 점을 미루어 봤을 때, 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저격한 것으로 보이는 대사들도 있다.) 허나 정치적으로 다소 위험하게 보이는 부분들을 차치하고 나에게 영화의 주인공이 론과 필립이라는 사실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인권운동이라는 좋은 목적을 지지하지만 폭력이라는 악한 수단에 망설이는 존과 인종과 인권에 무관심하다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게 되는 필립을 필두로 영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본영화가 선동과 정치의 영화가 아닌, 인식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라는 영화 스스로의 반증이 아닐까? 좋은 목적을 위한 좋지 못한 수단의 옳고 그름 이란 해묵은 주제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논쟁거리다. . 이처럼 다인종간의 갈등, 차별, 투쟁을 다룬 다는 점에서 ‘블랙 클랜스맨’은 여러모로 무거운 영화다. 그러한 무거운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스파이크 리가 채택한 것은 언더커버의 유형이다. 언더커버물은 서스펜스를 직조하기 용이하다는 태생적인 장점을 가진 장르다. 잠입한 필립의 신분이 발각되느냐 마냐의 서스펜스는 극을 지탱하는 하나의 큰 동력원으로 작용한다. ‘블랙 클랜스맨’이 진정 흥미로운 건 영화 속 서스펜스의 작동원리가 영화의 주제인 인종차별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필립의 경찰신분이 발각되느냐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필립이 유대인인 것이 발각되느냐에 초점을 둔다. 영화 속 말실수로 인해 약간의 위기에 처한 필립이 긴장되는 순간을 인종적인 농담으로 모면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상황이다. . 마침내 필립과 론의 정체가 주요 간부들에게 발각되고 패티리스가 테러를 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에서 론을 패트리스를 구해낸다. 패트리스를 구해낸 극적의 순간에서 마저도 론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울분을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대목임과 동시에 끝까지 영화가 주제에 눈을 때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각으로 인해 필립에게 “ 늦었네.” 라는 말을 듣던 론을 보여주던 초반부의 장면은 마지막 순간에 론이 필립에게 “너 늦었어.” 라는 말을 하는 장면으로 변주된다. . 차별과 혐오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약간은 모순된 방식이지만 결국 론은 본인의 주체를 찾았고 위의 대사로 미루어 보아 ‘블랙 클랜스맨’의 서사는 늘 뒤처지던 론이 한 발 앞서 뛰어 정의를 구현한 것으로 귀결되는 것인가? 잠시 그런 것처럼 보인다. 허나 앤딩이 이를 부정한다. ‘블랙 클랜스맨’의 서사가 향해있는 것은 현재진행형인 투쟁들이다. 영화의 마지막, 론과 패트리스가 문 밖으로 총을 겨누는 장면은 영화 속 그 어떤 장면보다 영화처럼 연출된 장면이다. 그러나 마치 극중극처럼 연출된 해당 장면 뒤에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현재 세상 속에서의 참극이다. 페이크다큐로 묘하게 현실과 영화를 맺으며 시작한 영화가 실제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영화와 현실을 이으며 끝나는 순간, 영화 속 투쟁들은 비단 70년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외면할 수 없는 현재의 투쟁들로 이어진다. 억측일지 모르겠다만 이처럼 훌륭한 영화가 해외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개봉 없이 vod서비스로 직행했다는 사실도 하나의 작은 방증인걸까?
This comment contains spoi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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