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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

주렁

5 month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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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ooks ・ 2004

Avg 3.8

_특이점의 시대를 가로질러 인간은 초인을 지향하지만 초인이 될 수는 없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을 짐승도 아니고 초인도 아닌 '중간자'로 보았다. 이때 초인은 완성된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가진 무언가다. 그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다리'라 불렀다. 이 표현이 정확해서 소름이 돋았다. 다리는 스스로 도착지가 되려 하지 않는다. 무너질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건너가게 한다. 다리가 초인을 향하고 있다면, 결국 초인은 그 불완전함을 정직하게 마주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실패와 모순을 삭제하지 않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끌어내어 다음 의미로 전환하는 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려는 의지 말이다. 긍정은 낙관과는 결이 다르다. 세계가 내 계획대로 굴러가서가 아니라, 계획을 어긋나게 만드는 우연까지 포함해 나로 만든다는 결의에 가깝다. 그 결의가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나 시대의 기준을 정답으로 받지 않는다. 오히려 정답을 다시 묻는 존재가 된다. 나는 초인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더 높이 올라서는 자가 아니라 더 깊이 탐구하는 자. 왜 살아야 하는지를 끝내 회피하지 않는 자. 결국 '초인'은 도착지가 아니라 동사(verb)로 남게 된다. 매일의 판단, 매 순간의 선택에서 자신에게 조금 더 엄격하고 세계에 조금 더 너그러운 태도를 반복하는 동사. 기술이 우리 머리 위로 그림자를 만들며 훌쩍 뛰어 넘어가더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이 느려터진 동사일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되 멈추지 않고, 무너지되 다시 의미를 세우는 일. 그 꾸준한 건너감 속에서만 초인이 잠깐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겠지. 그리고 그 잠깐의 빛이면 하루를 통째로 건너갈 이유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