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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감상이겠지만 <크라이 마초>를 보고 있으면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공명한다. 목적을 잊은 듯 옆길로 새는 로드무비 탓에 <라스트 미션>의 속편 같고, 여전히 감독 자신을 녹여내는 만큼 <그랜 토리노>가 떠오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좀 더 나아가면 <퍼펙트 월드>와 <무법자 조시 웰즈>와도 꽤 닮아 보인다. 나쁜 어른들, 나쁜 세상 사이에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픈 마음. <퍼펙트 월드>가 마치 이 땅 위를 벗어날 수 있게끔, 떠나보내듯 헬기에 아이를 태워 보냈다면, <크라이 마초>는 다시 녹록지 않은 현실 곁으로 아이를 보낸다. 다만 무책임한 선택이라기보단 그만큼 라파엘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좀 더 늘어 놓았던 <라스트 미션>에 비해 <크라이 마초>는 라파엘과 '함께한다'. 더 지켜보고, 더 들어준다. 라파엘이라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아버지 곁에서도 이제는 잘 크지 않을까. "마초는 부풀려졌다"며 그 멍청한 단어를 믿지 않는 <크라이 마초>는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어른이라는 또 다른, 진정한 마초를 선보이는 것만 같다. 꼰대라는 단어가 쉽게 오용되고 남용되는 요즘, 이렇게 밉지 않은 꼰대적 휴머니즘이 있을까. <라스트 미션>도 그랬지만 <크라이 마초>는 더 느리다. 마치 목적지에 이르는 게 싫은 듯 옆길로 새고, 라파엘과의 시간을 더 가지려는 듯 이야기는 딴청을 피운다. 긴장이 조성될 만하면 거부하기라도 하듯이 돌연 일소하고 떠나버린다. 점점 더 느려지고 느려지는 영화. 이건 혹시 이스트우드의 속도일까. 감독의 전작들도 이따금 느려지고 딴청을 피우긴 했지만, <크라이 마초>는 아예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영화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어느 가게로 향하는 마이크의 걸음을 찍던 장면처럼 <크라이 마초>는 전보다 훨씬 느려진 이스트우드의 걸음과 동작을 닮았다. 종종 이스트우드 영화는 영화에 제 자신을 녹여낸다고 말해지는데, 이는 단지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다거나 영화 내외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 자체가 이스트우드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과 속도를 닮아간다는 점 아닐까. 빼곡하게 예정된 서사 대신, <크라이 마초>는 풍경과 음악으로 감상을 메우고 공동체적인 온기를 더 감각한다. 치열한 이야기보다 캐릭터의 표정과 눈빛을 더 보는 영화, 재즈와 컨트리 송을 애정하는 영화, 차라리 따분한 대사 한 줄에 더 마음을 두는 영화. 누군가에게는 퇴보적으로 보이는 따분한 스타일일지 모르나, 분명 전에 없던 새로운 감상이 자리한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수많은 시시콜콜한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늙어버린 건 어떻게 치유할지 모르겠다"는 고백만 쓸쓸히 남는다. 그저 휴식과 잠을 권유하는 그의 처방마냥 마이크도 자꾸만 잠이 든다. 그러니, 언제 또 잠들지 모르니, 지금은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하겠다는 듯한 태도. 한갓된 소품처럼 보이는 <크라이 마초>는 어쩌면 이스트우드 자신을 위한 처방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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