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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ung_Wonly

Hyoung_Wonly

4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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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Books ・ 2022

Avg 4.0

미친 여자의 웃음소리가 다락방에 가두어져야만 했던 것. 다락방에 가둬진 미친 여자는 <제인 에어> 속 버사 메이슨, 미친 로체스터 부인. 이 책은 다락방 바로 아래층에 제인 에어가 살고 있고, 저 멀리 하늘을 보며 답답한 마음에 방안에서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walk to and fro 한다는 묘사가 버사와 제인 모두에게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버사와 제인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결혼 베일을 찢고, 불을 지르며 빌런(?)처럼 묘사된 버사의 행동들은 제인의 무의식적 소망에 부합하는 행위가 아닐까 묻고 있다. 멋진 책이다. 문해력 논란과 비 독서 시대에 대한 우려가 가득한 지금, 이런 1166 페이지짜리 벽돌 책(?)이 부활했다는 건 놀랍다. 다른 한편으로 지성의 양극화가 그만큼 극심하다는 방증인 듯 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다락에 갇혀서 배회하다가 기둥에 자기 머리를 박거나 쥐어뜯는 자학 행동을 하고, 풀려난 뒤 자신을 가둔 자의 집에 불 지르는 미친 사람 하나씩은 우리 속에 있기 마련이다. 삶에서 만나는 고통을 다루는 각자의 방식들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꼽아도 손색없는데...이 책과 엘렌 식수, 정희진의 글을 읽다 보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껏 특정한 부정적 감정을 마비시키는 것에만 집중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인생에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시점은 바로 이 감정의 마비에서 깨어나는 때이지 않을까. 한때 지나치게 감정적인 글과 행동들이 읽기 거북하고 우울과 스트레스를 부른다고 생각했지만, 독서/세월호/불꽃 취재단/퀴어 퍼레이드/소규모 소수 영화제/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등을 거치면서 그것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게 아니라 놀랍도록 용감하다고 느끼게 됐다. 여자인 사람, 장애인 사람, 가난한 사람이 모순 자체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그 현실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그에 대한 마음 상태까지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지를 생각하다 보면 소름이 돋는다. 이런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예술은 없다. 그래서 어떤 예술이라도 무작정 믿지 않는다. 그런 우울과 불안에 지친 마음을 가지고도 그동안 학습해온 대로 얼굴에 웃음을 띠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책을 읽는 동안 내 감정 상태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까 봐 초조했었던 마음 그리고 이런 불일치가 가져온 감정의 부침이 허탈하게 다가왔다. '과도한 사회적 미소', 웃지 않으면 아픈 사람처럼 비치던 내 주변 일상은 미스터리와 다름없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냐고 물음에 머뭇거리다가도 그들을 믿고 대답하는 순간, 모임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우중충해졌다. 이런 경우 '바람직한' 반응은 무엇일까. "아냐? 별일은 아니고, 그냥 좀 피곤해서..." 정도로 설령 상대가 왜 무엇 때문에 피곤한지 되물어줘도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원래 세상 살기가 피곤한 거지." 란 말과 함께 사회적 미소를 띠면 잠시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정말 별일 아니었다는 듯 지나간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렇다더라도 이런 나에게 누가 섣불리 위로를 건네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금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친절하게도 '어딜 가나 똑같다'며 '그냥 그러려니 하라'는 조언을 남겨준다. 어딜 가나 똑같나... 곱씹어보면서도 그 어디를 당장 가볼 수 없으니 알 길이 없어 금방 잊는다. 내가 경험한 것과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와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한다. 충돌 후 객관적으로 그럴만한 상황이었는지 되짚어보는 일이 잦다. "내가 실수한 건 없나." "잘못된 건 없나." "괜한 소리 한 게 아닐까." 예민한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부터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온다는 게 믿기 어렵다. 나는 이 사회에 몸담으면서 낙천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참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소수보다 다수에게 가혹한 세계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뭔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흔히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이 말이 한창 떠돌던 때, 상대의 잘못을 보거나 내가 상대에게 실수한 상황에서 역지사지 해결법이 말만큼 쉽지 않았다. 한동안 스스로가 부족해서 그게 잘 안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볼수록 지성의 부족, 공감의 부족 문제가 아니었다. 성별, 계급, 인종, 연령이 뒤섞인 채 각자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 역지사지는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같은 성별, 혈연 가족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버사 메이슨과 제인 에어를 동일시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알지 못한다. 다락방에 갇힌 여자는 (남성 세계의 입장에서) 미친 여자로서 정상적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제외되어 있다. <제인 에어>에서 고통받는 개인의 경험과 사회의 대화가 가능한 지점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한 웃음소리만 가끔 새어 나올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경험 앞에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에이 그럴 리가." "미쳤네." "중립 기어 박습니다." 중립 기어란 말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단된 사건이나 인물을 두고 믿을 만한(?) 정보 또는 결말이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 어떤 부정의에도 더럽혀지지 않고, 투쟁과 불일치가 없는 우아한 세계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하다. 나 대신 누군가가 이 불안하고 불순한 상황을 정리해줄 때까지 말이다. 중립 기어를 박아두겠다고 선언한 뒤 멈춰 버린 사람들 때문에 현실은 왜곡된다. 가만히 있어도 될 만큼 우리 사회와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이런 인생이 가능한 사람이 따지고 보면 얼마나 될까. 이성(理性)적으로 생각해보자면서, 불안이라는 자연스러운 이성과 감각을 감성(感性)으로 오인하고 거부한다. '진실', '객관'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원하는 '진실'이라는 건 무엇일까. '지나치게' 진실을 파헤치려 들면 버림받는다. 외롭고 서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