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민

고등어
Avg 3.3
(1996년 공연용 편집본(희곡) 감상 코멘트)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80년대를 알지 못한다. 그저 역사와 영화들로 대충이나마 짐작할 뿐이다. 지금으로썬 상상할 수도 없는 억압된 시절에 터지고 절여지도록 저항했던 고등어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평화는 없었을 것이다. 감히 가늠할 수도 없었던 용기와 희생이다. 개인적 이익이 아닌 공동의 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가. 그 시절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의 그 뒤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작품은 신념을 위해 싸우다 상처입고 서서히 죽어가는 인물들의 아픔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다소 충격적이고 더 암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신념에 더 강하게 부딪혔던 사람들이 모두 끔찍한 말로를 맞이하고, 외면하고 도망간 자만이 남아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말 현실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현실은 이렇게도 모순되어있다. 일제강점기 때에 숭고한 희생을 치룬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로, 친일파들은 부자로, 민주항쟁의 희생자들은 처참한 말로를, 전두환은 저택에. 예로부터 영웅은 항상 그 자리에서 죽임 당하고 숨었던 사람은 생을 이어간다. 이런 모순된 현실 속에서 옳은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아픈 일인지 가슴 저미게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구성이 다소 불륜에 치중되어 있고 인물들이 무기력한 것이 약간의 불편함을 사긴 했지만 이것 또한 인생의 일부분이라 생각되었다. 엉망진창인 인물들의 무기력과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이 체홉의 작품과도 닮아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저런 희생의 무덤 위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우린 몰지각한 지도자들을 몰아내고 어떤 지도자를 세웠는가. 정치인들이 무얼 하는지 대체 우린 관심이나 가지는가. 과거보다 개, 돼지가 되어가는 우리는 민중의 적이며, 피와 살을 바친 고등어를 팔아 넘기는 장사치이다. 우리는 적어도 연어가 되자. 끊임없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렇게 씨를 뿌리고 후대에 전하여 또 같은 역사가 반복될지라도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고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는 그 자체로 연못 안의 비단잉어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