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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의 원제는 '크리스토퍼 로빈'이다. 원제가 알려주듯이, 이 영화는 곰돌이 푸 시리즈의 실사 영화지만, 주인공을 크리스토퍼 로빈으로 삼은 영화로, 곰돌이 푸를 보고 자란 수많은 크리스토퍼 로빈들을 위해 만든 영화다. "Oh, bother", "Silly old bear" 같은 대사들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과 관객들을 다시 한번 헌드레드 에이커 숲으로 초대한다. 이 영화의 주 동력은 바로 동심에 대한 향수다. 곰돌이 푸를 어른으로서, 현실의 수많은 풍파를 견뎌내며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으로서 다시 만나며,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기억해가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이야기가 곧 관객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거기에 '패딩턴'과 흡사한 류의 동심자극 캐릭터와 귀여운 액션과 코미디로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오락을 선사한다. 스코어는 곰돌이 푸 테마곡도 있으며, 경쾌하고 명랑한 음악으로 점점 고조되며 다시 순수한 감성을 되찾아가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모험을 잘 표현했다. 이런 팬서비스와 추억 자극 자체는 나쁘진 않지만, 이 영화의 문제는 이런 거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패딩턴'은 아예 판타지 동화 같은 세계를 만들기 때문에 말하는 곰 패딩턴의 좌충우돌 모험이 귀엽고 신나면서 밝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이 영화의 세상은 우울하고 우중충하다. '패딩턴'은 배우들의 표정이나, 대사들로만 우울한 현실을 그리지만, 비주얼로 분위기를 쉽게 반전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를 우울하게 디자인했다. 이런 환경에서 말하는 동물 인형들이 희망을 전파하는 모습은 동심을 자극하며 기쁨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철없이 순진하게 보인다는 냉소적인 마음이 들게 했다. 이것이 후반부에선 아주 치명적으로 작용하는데, 메시지가 설교 톤으로 느껴지게 된다는 것이다. 캐릭터 애니메이션도 굉장히 아쉬웠다. 다시 '패딩턴'과 비교하자면, 패딩턴의 애니메이션은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구현했지만, 표정과 눈빛이 풍부했다. 다양한 감정 표현이 매 씬마다 가능했기 때문에 주인공에 쉽게 몰입하며,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제로 배우들 옆에서 걸어다니는 캐릭터로 느껴졌다. 반면에 이 영화는, 캐릭터들이 원작에선 나름 표정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CG 실사 버전의 표정은 모두 딱딱하고 메마르며, 시각적인 표현으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게 디자인했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땐 아주 기대가 됐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희망찬 판타지와 어두운 현실의 밸런스를 애매하게 잡으며,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기가 됐다. 애니메이션과 영상미는 모두 어두운 현실을 강조하지만 나머지 모든 것들은 그 어두운 현실에서 순진한 희망을 설교한다. '패딩턴' 같은 영화는 밝고 영롱한 세상에 그림자를 씌우는 장막을 주인공을 통해 걷어내지만, 이 영화가 그린 세상은 이미 잿빛 크레파스로 그린 상태였다. 결국 배경과 인물들과 메시지에 불협화음이 나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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