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n Isaac

불안
Avg 3.8
비교. . 비교는 불행과 밀접하다. 그래서 비교를 하지 말자는 말이 항상 나온다. 인생 그 자체를 살아가자고 말이다. . 그러나 비교에 너무 깊게 빠지면, '그 자체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인식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되려 반문한다. "인간은 결국 비교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비교적인 위치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끝내, "순수한 의미에서, 그 자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 하지만 그들은 논리적으로 의심스러운 주장을 하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비교가능성이 상존하는 것'과 '비교 를 존재의 본질로 삼는 것'은 다르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인간 사이에서는 비교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굳이 하고자 한다면, 인간을 계량화하고 서열을 매겨볼 수 있는 것은 많은 영역에서 항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굳이 자기자신을 비교 속에서 정의하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예를 들어, 체스를 반에서 10등하는 친구가 15등하는 친구보다는 비교적 더 잘할 것이다. 하지만 15등 친구는 자기 자신을 '15등'으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15등의 체스플레이는 고유한 독창성을 지닐 수도 있고, 15등은 체스를 함으로써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체스는 그만의 체스로 존재한다. 그 순간 15등은 자기 자신을 '15등'으로 이름붙이지 않고도,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 하에 그 자체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삶의 양식에서는 비교가 피해갈 수 없겠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 같다. . + 비교는 인식을 넘어 실체가 된다. 인식으로서의 비교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살아간다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실체의 위협에 직면한다. 결혼처럼. +자기없음이 비교를 낳고. 비교가 자기없음을 낳는다. 계란과 닭 중에 누가 먼저인지는 상관없다. 그 결과로 비혼 비출산 SNS 불행 헬조선 밴드왜건 진로결정 결혼식 여행경로 꿈없음 그 모든 것이 정해진다는 것만이 문제일 뿐. +비교가 안좋은 것은, 그 귀결이 영원히 누군가가 내 위에 있기에 스스로 비참하거나 교만해진다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사고과정 속에서 비교의 패러다임에 함몰되어 진정한 행복들 - 꿈 설렘 내재적 가치 진 선 미 사랑 - 들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