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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진 빚과 세금을 갚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하워드 형제가 찾아낸 해결책은 은행을 터는 것이고, 더 아이러니하게 세금으로 움직이는 경찰이 그들 형제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때 영화는 텍사스의 배경을 차용하면서 현대의 서부가 고전 서부극의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주로 보여주려 한다. 그 첫번째 전략은 피지배에 대한 저항으로 은행을 터는 하워드 형제를 백인으로, 그들을 쫓는 경찰중 한명인 알베르토를 멕시코-인디언 혼혈로 설정한 것이다. 이 간단한 배역 설정으로 인해 드러나는 사실은 과거 이루어졌던 인종간의 일방적인 착취가 사라진 서부에 새로운, 그러나 본질적으로 같은 자본의 착취가 들어서있다는 것이다. 지배구조는 모습을 바꾸었을뿐 사라지지 않았으며, 피지배자는 이제 유색인종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다. 이곳 서부의 또다른 특징은 모두가 당연하게 자신의 총을 지니고 다니며 위협과 마주하면 주저없이 발포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것을 스스로가 지키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이곳에서는 심지어 백인조차도 '코만치(모두의 적)'가 되어버리며, 생존은 자경과 배타를 전제한다. 공공연한 착취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인간애는 가족(형제, 부모자식) 밖에서 기능하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의 것은 스스로 지켜야만 하는 적자생존의 사회. 카메라가 서부의 배경에서 잡아내려 하는것은 단순한 시각적인 황량함이 아니라 거기에 형성되어있는 사회의 모습이며, 그렇게 서부사회의 본질적 건조함은 완전하게 스크린 위로 옮겨진다. 그 배경 위에 영화는 두 형제(와 유사형제)의 관계를 평행시키며, 그들 형제는 사소한 갈등을 겪으며 긴장하기도 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는 가족애에 의해 유지되는 관계이다. 영화는 서로 외에는 의지할 곳 없는 두 쌍의 형제가 맞물릴 때의 마찰을 통해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사막 위에 놓인 약간의 인간애가 얼마나 작아보이는지를 보여주려 하며, 나중에 가서는 토비와 마커스에게 완전한 고독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홀로 놓인 그들은 도무지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마커스는 수사를 종결시키지 못하고 은퇴한채로 배회하며, 토비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은행에게는 먹잇감 하나를 놓쳤다뿐 아무런 타격도 없다. 이제 그들이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결투에서 승리하는 수밖에 없지만, 야속하게도 그들의 결투마저 스크린 밖으로 밀려난다. 즉, 영화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더이상 공동체적 영웅이 탄생할 수 없다고, 다만 영화의 원제 'hell or high water', 무슨 일이 닥쳐도 대문에 기대어서서 스스로의 가치들을 지키려 분투하는 개인만이 여기에 남아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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