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B

성
Avg 4.0
이 소설 속에서 K는 외부인이다. 실제 외부에서 틈입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어떤 거대한 굴레,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그다지 K는 이 부조리하고 멍청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듯하다―그저 외부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때로는 신랄하게 따져 묻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신적, 사상적 외부인이기도 할 것이다. K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을의 정서적 분위기, 그 중심에는 공포가 있다. 막대한 권력을 가진 성의 관리들에게 자칫 잘못 보였다간 아말리아 댁처럼 파멸하게 되며, 제 보잘 것 없는 생활이라도 근근이 영위하고 살겠다면 그저 노예처럼 설설 기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고, 살아남기 위해 그저 기다리며, 살아남기 위해 할 말이 있어도 닥치고 산다. 먼 과거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이것은 달리 보아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처럼도 느껴지는데, 그도 그런 것이 부와 권력의 편차가 막대해진 먼 미래에는 그저 닥치고 설설 기는 것만이 내 생활을 영위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얼마나 모던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시적인 디테일을 제껴놓고 배면에 깔린 정서를 들여다보았을 때, 어느 시대의 어느 시점에라도 불현듯 찾아들 수 있는 악몽 같은 현실처럼 이 소설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디테일이 빈약한가, 그 시대에만 어울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로 다뤄지고 있는 아말리아 댁 이야기를 해보자. 권력자인 소르티니가 권력을 등에 업고 폭언이 섞인 추파를 아말리아에게 던지는데―현대의 법으로 따지면 어느 모로 보나 이것은 성폭력이다―, 그것을 찢어버리고 헤렌호프로 가지 않고 정조를 지켰다는 이유로 아말리아 댁은 파멸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소르티니가 폭압을 시도했어도 아말리아가 헤렌호프로 갔어야 맞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고―심지어 올가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도 겉으로 아말리아를 힐난하진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아말리아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어찌 됐건 아말리아 때문에 그들의 안온한 생활이 돌이킬 수 없이 부서졌다는 것은 자명하니까―시스템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을 오히려 저들이 먼저 매장해버림으로써 시스템을 공고히 유지시킨다. 부조리한 시스템은 이제 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그것을 반향 없이 유지하는 것만이 평화, 라고 믿어버리고 있는데 그런 부조리한 평화 속에 계속해서 돌멩이를 던져넣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K다. <소송>을 포함한 카프카의 전작들을 통틀어 K는 가장 능동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어떻게 이런 인물이 가장 능동적일 수 있는가 하겠지만 카프카의 소설 세계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나마 가장 사이다 같은 인물이다), 시스템에 그저 파묻히기보다 적어도 발버둥이라도 쳐 보겠다는 무기력한 결기 같은 것으로 가득한,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어찌 보면 K는 반영웅 담론으로 이해해도 무방한 인물이다. 겉보기엔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이용하고, 오로지 자신의 생활을 정착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지닌 이기적인 인물로 비춰지지만 결국 그가 정착시키려는 것은 이 모든 부조리를 뒤흔들어놓을 평화, 안온한 시스템을 붕괴하고 그 자리에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가져다 놓는 것, 바로 그것일 테다. 이 미완의 소설 속에서 그는 실패했고, 적어도 성공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길이 느닷없이 끊어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고무적인 것은 그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조리한 시스템 한 가운데에서 이것이 부조리한 것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고 그렇다면 적어도 발버둥은 쳐봐야 하지 않겠냐는, 카프카 말년의 묵묵한 한숨처럼 내게 이 소설은 느껴졌다. 미완의 소설이 이토록 형식적으로 아름다웠던 전례가 있는가. 어떤 장편 소설도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성>, <소송>, <실종자> 모두 미완이다)또한 결국 저 스스로의 인생도 제대로 완결짓지 못한 채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카프카를 대신해 이제 우리가 끝나지 못한 소설의 뒤를 해피 엔딩으로 메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