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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이 발명한 맥거핀은 영화의 본질을 닮았다. 존재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아무래도 좋을, 그 모든 것. 이 영화는 맥거핀으로 시작해 맥거핀으로 끝나는 히치콕의 모든 것이다. - *스포로 시작해 스포로 끝남 히치콕이 쉬어가려고 만든 영화다. 서스펜스는 완벽하지만 그것이 완성도로는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마지막 장면에서야 눈치챘다. 러시모어 석상에서 떨어지려는 이브를 손힐이 열차 침대에서 끌어당기며 투 샷이 되는데, 정말 긴박했던 상황을 신박하게 끝맺는 연출이었다. 더할 나위 없는 서스펜스에 만족스러운 해피엔딩이지만 이브가 어떻게 구출되었는지 둘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부연 설명 따윈 없어 황당하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이상했다. 이 영화는 손힐이 캐플란으로 오인되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이는 식당에 있던 누군가가 그를 "조지 캐플란"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왜 그를 캐플란으로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고 손힐도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그 사람이 히치콕이 아닌가 했다. 아니었다..) 또한 캐플란을 쫓는 세력, 캐플란을 만든 세력의 정체도 명확하질 않다. 목적도, 국적도 모르겠다. 근데 웃긴건 이렇게 전부 뭔지 모르겠는데 난 이 추격전에 몰입되서 엄청난 스릴을 느꼈다는 거다. 예전에 책에서 읽은 일화가 생각난다. 영화 원제가 <North by Northwest>인데 이런 방위는 존재 하질 않기 때문에 히치콕이 선택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선 올바른 번역이 뭐 "노스웨스트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라는 얘기도 있는데 이것도 좀 이상한 번역인듯. 이 영화 통틀어서 등장하는 비행기라고는 옥수수밭 경비행기가 전부인데? 비행기엔 숨을 곳이 없어서 도망 중인 손힐은 열차를 애용한다. 딱 한번 이브를 찾으려고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타긴 했는데, 장면 없이 대사로 처리되었다. 이 영화의 주 무대는 열차다. 굳이 노스웨스트 항공사가 제목에 올 이유는 없다.) 이쯤 되면 이 영화 자체가 히치콕에 의한 맥거핀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의미를 분석하려는 행위가 모두 부질없는 짓이고.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부려 놀았다. 게다가 타이틀 시퀀스는 솔 바스, 음악은 버나드 허먼, 각본 어니스트 리만이라서 작업 끝내고 완성품 봤을 때, 히치콕 본인도 뿌듯뿌듯 존잼이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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