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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소명(calling)에 대한 응답에 오로지 침묵과 흑백만이 담겨있다면 그 속엔 주저앉아 버린 자의 눈물로 가득 차겠지만, 내가 걸어오면서 느낀 모든 번뇌와 고통마저 소명의 일부임을 깨닫는다면 결심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채워주겠지. 우리는 모든 고난과 다채로운 색의 아름다움 속에서 순례의 길을 걷는다.” “you’ll be casting balls and i’ll be painting icons” 종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소년과 이콘을 그리기로 결심한 남자의 소명은, 각 개인이 이 단어를 품고 있는 의미부터가 다르다. 소년이 가지고 있는 소명은 사실 강제성 임무에 더 가깝다. 반면, 류블료프가 가지고 있는 소명은 개인의 지향점이다. 그런 그에겐 개인의 지향점에 가까운 두 가지 소명이 있는데, 종교인과 예술인이다. 우리는 소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출발이 어디서부터 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소명이 그저 내가 지켜야 하는 어느 가치관이 되었건, 혹은 인류 전체를 위한 막중한 책임이 되었든 간에 좌우지간 우린 이 소명을 품으며 살아간다. 정말 원어의 의미 그대로 누군가의 부름을 들은 후, 혹은 스스로의 결심으로부터 태어난 소명을 품게 된 순간에는 항상 이 소명과 정반대의 지점에서부터 속죄여 오는 속삭임에 우린 흔들린다. 소명을 향해 묵묵히 걸어오던 사람이건, 뜻하지 않던 길과 투쟁하고 있던 사람이건, 아무리 걸어도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지향점이나 혹은 당황과 함께 엄청난 불안과 부담을 껴안고 싸워야 함에 힘겨워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고 있는 우리. 부끄러움에 말문이 막혀버린 순간과 힘없이 흘리고 있는 눈물만이 소명에 대한 나의 응답인 건가. 하지만, 소명은 뭐랄까. 부름에 의한 스스로의 깨달음보다는 내가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거쳐온 수많은 성지들과 나도 모르게 걸어온 수많은 길들마저 의미를 부여하고픈 지점에서 파생된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살아온 삶 전체는 하나의 순례가 된다면, 소명의 응답은 하나의 올곧은 결과가 아닌 우리가 주저앉아 흘린 눈물과 흑백마저, 이 고난과 고민마저 소명의 일부가 아닐까. 어찌 되었건 우린 이 다채로운 색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색의 아름다움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오로지 흑백의 시선으로 살아간다면 오히려 흑과 백 이 둘 중에서 시작된 우리의 고민은 더욱 아프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소명이 마음속에 피어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과정 속에서 오직 나의 굳건했던 믿음과 당당했던 포부들이 섞인 그 시작점과 그에 반하는 옳은 결과만이 전부라면, 우리가 그 과정 속에 느끼는 아픔, 인내, 웃음과 눈물 모두 무슨 의미가 있냐는 뜻이다. 우린 이렇게 많은 색들 속에서 살아가는데 말이다. 영화가 무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려는 것 같아도 그것이 당최 무엇인지 잘 모를 때,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영화의 말미에 다다르면 그것이 실은 무엇이 되었던, 우린 뭔가를 깨닫고야 만다. 우리가 풀이에 성공했다기보단, 이 영화가 뭔가를 깨닫게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모두가 다른 시선을 지니듯, 세상은, 아니 우리는 개인마다 해석을 필요로 하긴 하는데 이런 의향 자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너무도 어렵게 만드는 듯하다. 괜스레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혹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에 답을 찾기 위한 욕망이 되었건 말이다. 우리가 미지한 무언가와 맞닿드릴 때, 신비와 진실을 풀어내고야 말겠다는 해석보다는 잘 알지도 못할지언정 내가 걸어온 길들을 떠올리며 나만의 의미를 덧붙이는 것이 더 시원하지 않을까. 사실은 이 영화를 비롯해 우리가 살면서 보는 모든 화면에 담긴 것들은 성화되지 않은 은유라기보단, 화면 그대로의 진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문자, 그림 그대로의 진실로 나에게 강한 감정의 여지를 주었다.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것도 많을 테고, 보이는 게 많을수록 알게 되는 것도 많겠지만, 굳이 예술인이 아니어도 종교인이 아니어도 살면서 가진 개개인의 소명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사람이라면, 무언가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진실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리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길 속에서 가끔 너무나 자유롭게 결속된다. 수많은 길들 사이에서 헤맨다는 말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이끌려온 순간들까지도 모든 길들인지라, 그냥 본인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모르게 걸어왔거나, 흘러왔거나, 지나쳐왔다는 말들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더 정확히 표현해주는 말인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길을 걸어옴에 있어서 자유롭지만, 우리가 하나의 소명과 하나의 결과만을 바라며 살아간다면 그 행위 자체가 우리를 가두는 것과는 다름이 없다. 하지만, 길을 걸어간다는 것. 이 과정 자체가 일종의 순례라고 한다면, 우리가 흘렸던 모든 눈물들은 더 이상 실패의 증거가 아니게 된다. 힘듦과 부끄러움의 눈물의 순간이 훗날 자랑스러운 나의 성지가 될 때까지 우린 계속 소명 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찾으려 걸어야만 한다. 개개인의 소명(calling)에 대한 응답에 오로지 침묵과 흑백만이 담겨있다면 그 속엔 주저앉아 버린 자의 눈물로 가득 차겠지만, 내가 걸어오면서 느낀 모든 번뇌와 고통마저 소명의 일부임을 깨닫는다면 마침내 결심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채워주겠지. 우린 알아야만 한다. 실은 우리 모두 이 모든 고난과 다채로운 색의 아름다움 속에서 순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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