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혁

섬
Avg 3.9
Jan 18, 2018.
"이제 내가 말한 그런 순간들을 경험하고 나서도 또 살 수 있을까? 사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예기치 않은 순간을 기다리면서 그저 살아남아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아무러면 어떠랴? 내게는 이미 <획득하는> 일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 말의 힘을 당신은 제대로 느낄 수 있겠는가? 제로에서 무한으로 옮겨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는가? 그렇지만 그 다음에는 무(無)로 다시 떨어진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가느다란 실 같은 빛이 남아서 잠 속에까지 따라오고 이렇게 귀에 대고 속삭인다. 옛날에 어느 날..... 그럴진대 나 자신보다도 더 내면적인 그 존재의 깊숙한 곳으로 천분의 일 초 동안에 내가 또다시 달려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 106p 나에게 있어 그르니에가 언급한 행운의 섬들은 바로 영국이다. 어딘가 오만한 영광의 건물들과 또한 끝없이 절제하는 대지들의 향연 속에서 나는 과장되고 현학적인 말투를 따라 새롭게 태어난 기분을 '맛'봤다. 실제로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살아 있음'의 기록을 남겨보기도 했다. 그것들이었다. 아직 정신들이 불안하고 미묘했던 미성년의 어느 날에 만났던 캐나다의 광대한 폭포를 마주했을 때와는 또 사뭇 다른 행운의 감정이었다. 평온한 공원 속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나무들의 잎 사이로 들이닥쳐 내리쬐는 햇살들을 맞았고, 그 안에서 이제는 어딜 가도 나의 귀를 침입하는 크고 작은 소음들에서 잠시나마 벗겨날 수 있었던 굉장한 시간들. 그 누군가의 눈길과 외침들로부터 해방된 가장 자유로운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르니에가 말했듯 그런 순간은 짧았고 어떤 점으로 각인된 후, 인생에서 쉬이 잊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 순간을 <획득>했고, 또다시 그곳을 영국 혹은 다른 곳, 그렇지 않다면 내가 발견치 못했던 이 나라의 어떤 마술같은 장소에서 느낄 수만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그 순간을 찾아서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닦겠지만서도, 그것은 어쩐지 찾는다는 개념보다는 기다린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획득한 순간부터 나는 더이상 필연적이고 인위적인 나의 정신으로부터 발견할 수는 없다. 우연적인 번개같은 순간을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