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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사랑에 '왜?'라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순간 그 사랑은 종료된다. 어쩌면 사랑에는 이유가 필요없을 수 있기 때문에. . . “왜 그 사람을 사랑해요?”라고 물었을 때, “예뻐서요, 착해서요. 혹은 돈이 많아서요.”와 같은 이유가 아니라, “그 사람이니까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러한 모습을 띠어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 . 좋아하는 것은 비의지적인 행동이다.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큐피트의 화살 혹은 호르몬 작용에 의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 없다.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빠지게 된다. . . 하지만 떠오른 공이 반드시 땅에 떨어지듯, 신비한 마법도 반드시 다시 지상의 현실로 돌아온다.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사랑은 전적으로 의지적인 행동이다. 즉, 노력 없이는 절대로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다 아는 것처럼 느껴져 새로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성이 더욱 매력적이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그 이외의 여러 유혹이나 권태로움이 습격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사람’이어야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 .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하듯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처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모든 면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본다.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을 모두 보완해줄 완벽한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불완전한 사람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욱 더 불완전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지상의 현실로 내려온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이러한 콩깍지가 벗겨진 지상의 현실에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세계 전체를 한꺼번에 받아들일 것이 요구된다. 사랑은 절대적으로 취사선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은 장밋빛 모습과 핏빛 모습이 모두 뒤섞여 있는 빨간색이다. “난 널 사랑해(너의 단점들은 빼고)” 이 문장은 말 그대로 형용모순이다. 스피노자의 “한정은 부정이다.”라는 문구처럼 사랑도 한정해서 사랑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사랑하겠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즉, 그러한 것이 사라지면 사랑하지 않겠다는 조건적인 사랑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다시 한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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