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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철학자이지만 가부장적 독재자인 램지, 매력적이지만 가정의 천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던 램지 부인, 그리고 그 램지 부인을 그려내면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 했던 화가 릴리의 관계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개척하는 새로운 여성이 되고자 했던 울프는 <등대로>를 통해 새로운 문학(모더니즘)을 열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램지와 그의 부인,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을 다자적 관점에서 발화(대화와 설명을 구분 짓지 않고) 시켜, 인간 내면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의식의 흐름을 드러낸다. 이로써 같은 사건이라도 시점에 따라 의미와 평가는 달라지기 마련이라는 점, 그리고 같은 인물이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인식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밝혔다. 울프는 전후 시대의 달라진 세계를 인간 내면의 풍경으로 그려내면서 장담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하는 그 길을 가늠해 본 셈이다. "재빨리, 마치 그녀가 저기 있는 어떤 것에 의하여 상기된 것처럼 그녀는 캔버스를 향해 돌아섰다. 거기에 그녀의 그림이 있었다. 그렇다, 그 모든 초록색들과 파란색들을 가지고 선들이 달려올라 가고 가로질러 가면서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그림이 다락방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그것은 결국은 파괴되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녀는 브러시를 다시 잡으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층계를 바라보았는데 비어 있었고, 캔버스를 바라보니까 시계가 뿌옇게 흐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그것을 한순간 명확하게 본 것처럼 갑자기 강렬하게 그녀는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을 하나 그려 넣었다. 됐다. 끝났다. 그래, 브러시를 내려놓으면서, 극도의 피로를 느끼면서,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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