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
구준홍

구준홍

5 years ago

4.0


content

아직도 가야 할 길

Books ・ 2011

Avg 4.0

아직도 가야 할 길(스캇 펙, 1978) @201028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이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책이라는데,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잘 읽히는 책이었다. 앞부분은 굉장히 감명깊게 읽었는데, 마지막 챕터가 영 좋지 않아서 어디 추천해주기에 애매해져버렸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일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며 얻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기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평소에 나도 많이 생각하던 부분이기도 하고, 이 사람이 얘기하는 인생철학이 공감이 많이 되어서 굉장히 감명깊게 읽었다. 여기에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실제 환자 치료 경험을 통해 자기 철학의 근거를 받쳐주니까 신뢰성도 많이 높아졌다. 책이 총 네 챕터인데, 첫 챕터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자세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각종 정신질환들이 근본적으로 인간 내면의 어떤 부분에서 생겨나는지 분석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면서 살아나가기를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인생은 고통의 바다이며 세상에 쉽고 편한 길은 없고 자신의 눈앞에 놓인 문제를 책임감있게 맞닥뜨리려는 자세를 강조한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런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데에서 각종 신경증, 성격장애, 정신병 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또하나 중시하는 가치가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이다. 직접적인 거짓말이든 간접적으로 숨기는 것이든 이런 행동은 모두 현실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일을 피해가기 위한 수단이므로 이것이 개인의 정신 발달에 도움이 안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가 환자들을 치료하려고 상담을 해보면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환자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생긴 정신적 문제의 근원을 숨기고 회피하고 있으며, 의사가 하는 일은 환자를 잘 어르거나 압박하여 이를 스스로 드러내게 하고 그럼으로써 문제를 치유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가 어릴적에 잘못 양육한 것이 자식의 정신 발달에 영향을 미쳐 이상행동이 나타났는데, 자식은 부모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고 주장하다가 상담이 진행될수록 부모가 자신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치유의 길로 들어서는 식이다. 저자의 치료케이스들을 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어떤 사람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 문제의 근원이 전부 부모에게 소급되는 것 같다. 사실 너무 노골적이라 이게 진짜 사실인지 좀 의심되긴 하는데, 어쨌든 이 책에 나온 내용으로는 그렇다. 유아기의 자식에게는 부모가 이 세상 그 자체이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다루는 방식이 자식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이 세계관이 삐뚤어진 경우 자라서 세상을 잘못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어 정신질환이 발생한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다음 챕터는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우선 앞선 챕터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 정신의 성숙, 확장'인데,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열반 같은 것과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 그를 위한 훈련으로 위에서 언급한 책임감, 정직 등의 가치가 중시된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적 성숙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데, 그럼에도 이를 가능케 하는 의지가 바로 사랑이라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하려는 의지' 이다. 보면 알겠지만 에로스적인 사랑이랑은 거의 상관이 없는데, 실제로 저자는 에로스적 사랑에 대해 비판적이다. '사랑에 빠지는 느낌' 에 속아서 이걸 실제 사랑이라고 착각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 '느낌' 이 실제 사랑을 키우는데 도움은 줄 수 있다고 본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은 그래서 지극히 이성적이고, 일종의 정신치료와 비슷한 개념이다(실제로 정신치료에 비유한다). 상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상대의 내면적 성장을 이끌어내고, 상대의 내면과 합일을 이룸으로써 자기 자신 역시 성장을 하는 과정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런 사랑은 연인, 부모자식, 일반 인류 등 모든 대상에 대해 할 수 있는 개념이다. 특히 사랑을 애착, 의존성, 느낌 과 구별하면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세번째 챕터부터는 종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사실 뒤쪽 챕터로 갈수록 종교적 성향이 강해져서 좀 읽기에 불편했다. 종교적인 내용을 빼면 정말 훌륭한 책인 것 같은데..그래도 이 챕터는 좀 나은 편으로, 정신 치료와 이를 통한 정신적 성장의 과정에 종교가 어떻게 작용하나에 대해 사례를 든 것이다. 저자는 교리에 얽매여서 질환이 생겼다가 치료된 후 종교를 버린 경우,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다가 치료 후 자신이 종교적인 사람을 깨닫고 신학대학에 간 경우 등을 들며 종교 그 자체가 치료과정에 선이나 악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뒤부터 다음 챕터까지 이어지는 부분인데, 저자는 기적이나 은총과 같은 것이 실존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과학과 접목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우선 과학은 모든 사물을 기본적으로 의심하면서 바라보는 태도가 있다는 점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지만, 정작 이런 과학적 세계관 자체를 회의주의적으로 바라봐야한다면서 기적, 은총과 같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없다고 이야기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가 은총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잘 와닿지 않았는데, 세상엔 과학적 근거를 대기 어려운 행운들이 많이 일어남->과학자들은 그저 우연이라고 얘기하겠지만 그렇다기엔 그런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남->그러니까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선한 힘이 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라는 논리다. 행운의 예시로 환자 치료 중에 문득 치료 방법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거나, 교통사고 위기에 운좋게 다치지 않았다던가, 우연히 친구랑 같은 내용의 꿈을 같은 시기에 꾸었다던가 하는 일들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초자연적인 현상을 긍정하겠다는 것인데..솔직히 이건 잘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더욱 노답이었던 것은 또 여기서 물리를 가져와서 은총을 설명하려고 한 것인데, 생물의 진화는 열역학 2법칙에 위반되니까 이게 은총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거 딱 창조과학 썰인데..이 부분 읽고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심지어 엔트로피의 개념 자체도 틀리게 서술하고 있었다. 뭐 이런 식이고..어쨌든 저자가 주장하고싶은 것은 이렇다. 세상에는 (꼭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고) 세상을 선하게 만드려는 거대한 의지(=은총)가 존재하며, 인간은 본디 무의식적으로는 이러한 신의 의지를 체화하고 있으나 의식이 자신의 게으름으로(저자는 정신적 게으름을 악의 근원으로 본다. 여기도 엔트로피 어쩌고 하면서 설명하는데..sigh) 무의식과 엇나갈 때 무의식이 의식에게 주는 경고가 정신질환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치료자의 도움을 받아) 우리 내면, 무의식의 목소리를 들어야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은총의 힘을 믿고 나의 정신을 성장시켜 의식을 세상의 선한 의지와 합치시키면 누구나 하느님과 같이 영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정신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고 그렇게 세상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이런 내용의 책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종교적인 내용만 빼면 나는 거의 모든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정직, 책임감, 미루지 않기 등 인생의 지침으로 쓸만한 내용들이 알차게 담겨있었고 정신치료의 과정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예시도 볼만했다. 막판에 종교로 뇌절하지만 않았으면 참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