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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JE

5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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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enix

Movies ・ 2014

Avg 4.0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는 죽기 전과 같은 새일까.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재건되지 못하는 삶. 그렇다고 과거를 잊거나 지울 수도 없는 흉터와 문신이 아프다. 이야기보다도 니나 호스의 연기가 훨씬 복잡다단하고 풍부한 느낌인데, 빛과 어둠 사이 교묘하게 놓이는 표정들도 그러하지만, 영화 속 등장하는 그녀의 걸음들이 가장 오묘하다. 영화 전반부 잔해만 남은 집터를 비틀거리며 걷던 위태로운 걸음, '연극'을 위해 조니의 집으로 다시 찾아와 들어설 때 계단을 내려오던 어색하고 불안한 걸음, (레네의 편지 보이스오버를 지나) 한때 숨어 있던 모텔로 향하는 넬리의 얼마간 초연해 보이는 걸음(혹은 그 뒷모습). 특히 넬리가 믿는 조니라는 과거의 허상만 찾으며 (그야말로 유령처럼)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는 느릿한 걸음이 유독 쓸쓸하다. 그래서인지, 넬리가 좇는 조니라는 허상도 조니가 좇는 (완벽한) 넬리라는 판타지도 모두 무너진 엔딩 씬이 더욱 오롯하다. 여름은 저물었고 우리의 시간은 지나갔다고, 커튼이 내려오고 모든 게 끝났다고, 우린 이제 늦었다고.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 넬리의 목소리가 반주 없이 홀로 채워진다. 또 한번, 넬리의 걸음이 반복되나 차마 프레임으로 담을 수 없다는 듯 잔뜩 흐려지고 만다. <피닉스>는 분명 전후 독일을 향한 시선이지만, 흡사 이 땅 위의 모든 타자를 위한 따스하면서도 쓸쓸히 아름다운, <현기증>의 후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