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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없음(0)을 향해 세어가며 악착같이 버텨 온 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였을 때, 마침내 고통이 사라지고 동시에 그 이유마저 없어진다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없음의 순간에서 무를 견디지 못해 삶을 끝내고픈 충동이 끊임없이 충돌할 때, 내 앞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단 하나의 소명을 붙잡아야 한다.” 조는 몸에도 흉터가 많은 사람이지만,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마음의 흉터다. 거구의 육체를 지닌 사람이 나약하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나의 고통이 아닌, 나의 죄책감에 있다. 그는 전쟁터에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소녀에게 건넨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그는 현장에 너무도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막지 못했다. 그가 아버지를 피해 숨었었기 때문에 그곳에 없었던 그 대신에 그곳에 있었던 어머니가 고통받았다. 그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생긴 죄책감들이다. 니나와 조의 공통점은 고통 속에서 0까지 숫자를 센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카운트다운은 고통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의 삶에 그나마 끝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 그들은 고통 속에서 없음(0)을 향해 세어가며 악착같이 견디며 살아온다. 하지만, 다시금 고통으로 재회하게 만드는 흉터들은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었던 보람마저 무너뜨린다. 현재 나의 불안한 삶의 근원은 고통으로 이어져 온 내 삶과 몸의 역사들이다. 현실마저 과거의 잔상처럼 살아가는데 그렇게 흔들리면서 불안하게 버텨온 이유가 뭘까. 낙인처럼 몸으로 새긴 고통의 역사를 기반으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현실의 걸음걸이는 깨어나지 못할 과거의 악몽에서 마치 몽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늘 없음을 바라며 살아왔는데 막상 고통으로부터 한숨을 돌리고 찾아온 무를 견디지 못한다. 없음을 마주했을 때, 그 무지의 막막함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제서야 앞으로 내가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 지옥 속에서 끝까지 살아야 했었던 유일한 이유들은 이 고통이 끝나기를, 즉 없음을 바라기 때문이었으나, 바꿔서 얘기하자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 고통이 끝나는 없음이 찾아오는 순간에는 동시에 내가 살아야만 하는 유일한 이유도 사라진다. 그동안 나의 모든 삶은 고통이었고, 고통이 끝난다는 것은 내 삶 역시도 끝이라는 것일까. 내가 악착같이 버티며 살았던 과거와 이제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끝이 나버렸을 때, 그러니까 고통 속에서 없음(0)을 향해 세어가며 악착같이 견디며 살아온 삶과 그토록 바라왔던 없음의 순간에서 무를 견디지 못해 삶을 끝내고픈 충동이 끊임없이 충돌할 때 우리는 내 앞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단 하나의 소명을 붙잡아야만 한다. 우리의 흉터는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우리의 고통은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생긴다. 어차피 삶을 몽유하는 육신을 구원받기 늦었다면, 앞으로 남은 이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내가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내가 고통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너만은 그 고통 속에서 흉터를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한다. 그러니 너는 그 고통 속에서 없었던 거야. 대신에, 네가 고통받는 그곳에 언제든지 내가 지켜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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