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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나리

서재나리

5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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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Books ・ 2020

Avg 3.8

여덞개의 단편 중 《흑설탕 캔디》와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 제일 좋았다. 백수린작가의 소설은 처음 접했다.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글에 옮겨놓은 듯한 생생한 묘사에 마치 그림을 보는 느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게 바로 문학작가다'라고 온몸으로 내뿜는 섬세한 글도 글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직시하는 작가의 온기어린 시선이 마음을 몇번이나 건드렸는지 모르겠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내리던 행복의 찰나들."-흑설탕캔디中 이런 즐거움과 기쁨은 뭐니뭐니해도 타인과 엮일 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MSG 없는 음식이 건강엔 좋아도 좀 싱겁듯, 혼자서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면 생각지 못한 자극을 받게 되고, 강도에 따라 그 순간이 살아가면서 계속 돌아보게 만드는 추억이 된다. 할머니가 프랑스에서 만난 피아노치는 이웃과의 나날이 그랬고, 날티로 무장한 학교친구와의 은밀한 하굣길 대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삶은 혼자 살아가는거라고 매번 센척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사람과의 부대낌을 소중히 하는 내게 그것이 절대 헛된 기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책이다.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있는 인연이 아니라면 큰 의미 없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줄 몰랐던 천진난만한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체감하던 시기, 관계에 대한 기대감보단 시작도 전에 회의감부터 밀려오던, 아직 한참 애기였으면서 스스로 어른이라며 괜히 시니컬해지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함께였던 순간이 찰나에 불과해도 그 수많은 찰나들이 삶을 채운다는걸, 또 누군가와 잠시라도 유대감을 나눈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젠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면서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텐데 마지막에 옆에 있는 사람들만 의미가 있다면 삶에 무의미한 부분이 너무 많아진다.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 '찰나의 순간'들이 결코 하찮지 않음을 말하는 책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