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란taran

Crimes and Misdemeanors
Avg 3.6
“이제 비가 그치면 자연의 만물은 상쾌해져 가볍게 숨을 내쉴 겁니다. 오직 나만 소나기에 상쾌해지지 않을 뿐. 낮이나 밤이나 마치 집귀신처럼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생각에 숨이 막힙니다. 과거는 없고, 과거는 하찮은 일에 바보같이 닳아 버렸습니다. 현재도 무섭도록 허망합니다. 바로 이게 나의 삶이고 나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내 감정은 구멍으로 기어든 햇빛처럼 헛되이 사라집니다. 나 자신도 사라집니다.” 우선 영화에 나오는 범죄에 대해 그 어떤이유에서든지 동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생각하고 느낀것을 적고싶다. 우디앨런의 영화는 삶과 사람에 대해, 종교, 성, 가족관계에 얽혀버린 인생에 대해 다층적으로 생각하도록 생겨났다.영화는 굳이 현실을 분리시키지 않고, 영화적 장치를 통해 쉽게 관객을 주제속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영화는 종종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나 체호프의 4대희곡을 떠올리는데, 이번 범죄와 비행은 바냐아저씨가 떠올랐다. 종교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범죄하는 인간. 그 속에서 엇갈리는 운명과 비극. 최후의 순간엔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계속해나가는 인간들. (우디앨런의 이야기가 더 냉소적이고 비관적이긴 하다.) 체호프의 희곡의 소냐는 바냐아저씨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바냐 아저씨, 사는 거예요. 길고 긴 낮과 오랜 밤들을 살아 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들을 참아내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그리고 우리의 시간이 찾아와, 조용히 죽어 무덤에 가면 얘기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하느님이 가엾게 여기시겠죠. 우리는, 아저씨, 사랑하는 아저씨, 밝고 아름답고 우아한 삶을 보게 될 거예요. 우리는 기뻐하며, 지금 이 불행을, 감격에 젖어 미소를 띠며 돌아보겠죠. 그리고 쉬는 거예요. 나는 믿어요, 아저씨, 나는 뜨겁게, 간절히 믿어요.” 냉소와 좌절속에서도 언제나 낙관은 함께 존재할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체호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