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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직후,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여권을 검사하는 독일 국경 앞. 유대인 수용소의 기적적인 생존자 넬리는 제3자가 비로소 고통의 증거를 두 눈으로 목격하기 전까지는 심지어 에바 브라운(히틀러의 아내)과도 별 다를 것 없는 취급이다. 굳이 고통의 흔적을 직접 카메라로 비추지 않고, 병사의 시선으로 대신한 페촐트 감독의 조심스러운 연출은 <피닉스>의 오프닝처럼 어둠 속에서 눈부신 '빛'을 향하는 넬리의 여정을 극도로 세심하게 다룬다. 감독이 관심을 둔 분야는 단순히 피해자의 고통을 깊숙히 들여다보는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듯, 작품의 초반부는 철저히 넬리가 타자로부터 관찰 당하는 시점으로 진행된다. 대신 줄곧 타자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 속에서 고통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의 동기가 되는 동아줄과도 같은 희망이 무엇인지에 더 중점을 둔다.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무심한 독일 병사는 곧 관객으로 대체된다. 성형수술을 받고 붕대를 감은 똑같은 환자 2명을 통해 유린하는 시퀀스는 소위 관객을 한 방 먹이는 셈이다. 붕대를 풀어낸 후, 넬리의 공허한 마음과 사라진 정체성은 각각 폐허가 된 집의 잔해와 깨진 유리 속 반사된 모습으로 대변된다. 수술 전 되찾고 싶다던 그녀의 얼굴은 타인(조니,레네 등)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던 옛 사진 속 과거 넬리의 정체성 그자체로 대체된다. 나치 시절 같은 건 없었다는 듯이 재빨리 일상으로 돌아간 전후 독일인들은 어떨까. 그들이 넬리를 보는 시선은 연주 후에 기계적으로 답례를 요구하는 길거리 맹인 악사와 다름 없다. 정말로 눈이 먼 사람처럼 모두가 무심하다. 심지어 조니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나치와도 별다를 것 없는 파렴치한 폭력배로 대체되었으며, 막상 진짜 남편 조니는 스스로 자기자신을 조니 대신 요하네스로 대체해 숨어버리고 더이상 조니로 불리길 거부한다. 이렇게 넬리 본인과 주변이 무한히 대체된것만 같은 세상에서 과연 넬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넬리 역시 자신을 에스더로 대체해 그 험난한 과정에 뛰어든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자 정체성 회복의 길이 자신의 유산을 노리는 남편 조니에게 있다는 점, 수용소에서 탈출한 자와 수용소로 밀어넣은 자가 협력한다는 점, 게다가 넬리가 자신을 숨기고 남의 이름으로 자신을 대체해야하는 상황은 당시 혼란스럽고 난해했던 전후상에 다름 아니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피닉스>는 이후 넬리의 회복 과정에 충실하다. 특히 어둠에 익숙했던 그녀가 '빛'을 다시 받기까지 펼쳐지는 일련의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며, 그 심리를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배우의 열연 역시 돋보인다. 이와 더불어 서서히 넬리의 시선이 많아진다. 주체성을 회복하며 피관찰자에서 관찰자로, 후반에는 남편과의 갑을 관계가 전복되는 듯한 전개는 점진적으로 훌륭한 엔딩까지 이어지기에 그 짜릿함이 배가 된다. 한편 <피닉스>는 타자의 시선을 결코 놓지 않는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아내 연기에 화려한 레드 드레스와 파리산 구두가 필요하다고 믿는 조니는 결코 좁힐 수 없는 넬리(피해자)와의 거리를 체험케하며, 무심함을 넘어 서늘함을 생성한다. 중간중간 아내와 너무나도 닮은 넬리에게 당황하거나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조니는 끝내 아내를 유산으로 대체해 버린다. 죄책감을 외면하기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수많은 자의적 대체로 범벅된 이 작품 속에서 대체성은 회피성과 결부된다. 이는 정당화, 합리화에 급급했던 위선적인 전후 독일인들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엔딩에서 조니만큼이나 어색해하고 당황한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중 일부는 나치였고, 대다수는 방관자였다. 과거를 외면하고 싶은 그들은 역 앞에서 다시금 마주한 넬리를 자신들이 기억하는 '과거의 넬리'로 대체하고자 애쓴다. 유일하게 자신을 대체하지 않은 인물인 레네는 대체 대신 자살을 택한다. 개인적, 국가적 과오를 열렬히 회피하고 방관하며 침묵하는 독일인들 앞에 덩그러니 남은 유대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비록 생존했을지언정 그토록 좁디 좁다. 그녀는 힘겨웠던 과거를 잊거나 행복했던 대과거로 현재를 대체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한 채로 팔레스타인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길 원했다. 레네가 원하던 길을 넬리가 그대로 따라갔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독일인이 아닌 유대인 넬리가 불러주길 바랐던 레네의 신청곡 Speak Low를, 유대인의 목소리로 독일인들 앞에서 완벽하게 소화하는 아름다운 엔딩 시퀀스를 통해 우린 짐작할 수 있다. 넬리 역시 더이상 '에스더' 또는 '과거의 넬리'로 '현재의 넬리'를 대체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롭게 태어난 불사조처럼 힘차고도 처연한 날갯짓을 하리라. 빨간 드레스를 입은채 노래를 마친 후 검은 옷을 움켜쥐고 나가는 넬리의 '빛'나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배신자, 방관자들의 얼빠진 표정. 그 쇼트를 보며 작중 가정부 엘리자베스의 대사가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여기선 불(빛)은 꺼두세요. 벌레가 엄청 꼬이거든요. 전쟁도 걔네한텐 별 상관 없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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