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민감하게 인식하면서 우리가 살아남는 법!
우리 세대의 조용하고 우아한 주류로의 전환
MZ세대가 쓴 돈과 인생 이야기
자본주의 키즈가 쓴 ‘요즘 애들’ 이야기
이 책은 자본주의 키즈이자 흔히 ‘MZ세대’라 불리는 1989년생 저자가 삶에 대한 자신의 명료한 세계관을 표출하고자 썼다. 현직 일간지 기자로서 세간의 세대론이 갖는 허위를 예민하게 느껴온 그는 이 책에서 직설적인 날것의 언어와 태도로 자기 세대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 키즈임에도 자신의 삶을 내밀하게 지배하고 있는 모토들이 사실 자본주의를 포함한 기성의 가치와 얼마나 불화하는지도 보여준다. 저자는 자기 세대의 모든 관점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진보나 보수의 이념보다는 세대적 동질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편이라고 고백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그는 마치 ‘무소유’의 철학자 같은 태도로 명상과 요가를 하지만, 주식장이 열리면 월가의 트레이더라도 된 양 주식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멸사봉공의 근면성실은 강하게 부정하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미라클 모닝’은 긍정한다. 모든 종류의 낭비를 거부하며 10년 된 밥솥을 쓰지만, 일대일 운동 레슨 같은 경험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저축을 하지 않는 대신 부동산 정보에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닦달하는 동기부여 강의에는 매력을 못 느끼지만, 누구보다 자기계발에 열심이다.
판이한 두 행동의 밑바탕에는 일관된 명제가 깔려 있다. 사회에 휘둘리지 않고 ‘나로 존재’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분투할 것. 구체제를 전복시켜 신체제를 세울 명분도 의지도 힘도 없기에 지금의 테두리 안에서 안락한 요새를 만들어낼 것. 그것이 비움을 실천하면서 동시에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이유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이 노동과 생산을 아우른 경제성장률을 앞지른다’고 말한 것에 대해 MZ세대는 옳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독서의 포인트가 다르다. 기성세대는 피케티로부터 ‘불평등이 극심하니 부자 증세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머릿속에 받아들였다면, 요즘 세대는 기술 적응력을 무기 삼아 자신의 ‘자본수익률’을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한다. 더욱이 칸트가 도덕법칙으로 제시한 ‘정언명령’을 이 세대는 ‘경제적 자유라는 정언명령’으로 응용하며 되새긴다.
그동안 세대론에 관한 책은 여러 권 있었다. 하지만 MZ세대가 소비, 경제, 투자, 돈, 환경, 생활, 배움, 자기계발, 동물윤리, 페미니즘 등을 한 권의 책에서 논한 적은 없다. 저자는 ‘자본주의 키즈’라는 명명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영락없는 자본주의 키즈임을 깨닫는다. ‘꼰대’와 MZ세대의 경계를 곧잘 넘나들지만, 생활 방식을 관찰해보면 자신은 영락없는 ‘요즘 애들’이다. 세대론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미증유의 시대를 가장 잘 개척해나가는 존재는 단연 ‘미증유의 세대’라고 여긴다.
이 책의 강점은 언뜻 모순돼 보이는 가치들을 한 몸에 체현하고 있는 저자(의 세대)가 가치충돌적인 점들을 제 방식대로 소화시킨 뒤 생존에 성공하면서도 다른 방식의 ‘윤리적 주체’로 나아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금융 치료와 자본주의적 연대로 거듭나는 자아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로 불리는 MZ세대는 자존을 지키기 위해 이재에 눈을 뜨고 자연스레 윗세대에 대해선 불편한 감정을 품는다. 저자는 20대에 겪었던 몇몇 경험으로 기성세대에 대해 뚜렷한 인상을 갖게 했다. 어릴 적부터 주거 불안정을 겪었던 저자는 ‘주거 안정’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고, 29세에 저축을 깨고 LTV 70퍼센트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서울 변두리의 작은 주공아파트를 구매하게 된다. 하지만 벅차오르는 기쁨이어야 할 이 일은 모욕과 당황, 눈물로 얼룩진 기억이기도 하다.
당시 아파트 매도인은 집을 여러 채 거느린 70대 남성으로, 약속 시간보다 40분 늦었음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저자는 예산이 빠듯해 “혹시 200만 원 정도만 빼주실 수 없나요?”라고 부탁했다. 이때 매도인의 냉소와 매도인 측 중개사의 책망으로 저자는 크게 당황했다. 20대 매수인 앞에서 공인중개사는 매도인의 편의만 헤아렸고, 무시나 반말은 예사였다. 난생처음 자가주택을 산 날, 기념사진 속의 저자는 눈이 퉁퉁 불어 있었다. 이 기억은 대학 하숙생 시절 매일 똑같은 반찬만 내놓으며 계란 프라이 하나 해주기 아까워했던 주인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깨닫게 했다. 저자는 저금리와 기술 격변의 시대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우월한 자원(시간, 젊음)을 레버리지 삼아, 기술 적응력을 발휘하며 주류 전환을 이루는 것이 ‘조용하고도 우아한 복수’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나 그 지인들은 매일 아침 경제 유튜브를 보며 전날 미국 증시 시황을 이해하고, 국내 증시를 예측한다. 경제 기사를 읽으며 코로나 이후 산업 재편을 예측하고, 금융 스터디도 한다. “이재에 밝은 게 뭐 어때서?”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은 소셜미디어, 팟캐스트를 통해 금융 감각을 체득한다.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이 폭등하는 동안 급여만으로는 일상도 영위하기 힘들다는 것, ‘노동 수익’만으로 이뤄진 삶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걸 이들 세대는 깨달으면서 다른 삶의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경제적 자유’를 최상단에 두고 어떻게든 부를 창출할 새로운 수단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이들은 이전처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충동적으로 돈을 쓰는 ‘시발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다. 커피 한 잔 살 돈으로 주식 한 주를 매입해 주식 단타 결과를 카톡 대화방에 공유한다. 그렇다면 정말 금융이 삶의 활력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한때 금융이란 단어만 들어도 ‘탐욕’을 떠올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젠 ‘타인을 약탈하지 않는 한 금융을 친근하게 여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돈은 ‘부정적 탐욕’에서 ‘긍정적 효능’으로, ‘쓰는 것’에서 ‘불리는 것’으로 의미가 달라졌다. 이것은 기성세대에 의해 출로가 막힌 이들이 자기 삶을 단단히 꾸려나가겠다는 다짐에서 나온 고군분투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덕
물질 그 자체가 오늘날의 사회에서 ‘힘’으로 존재함을 부정할 순 없다. 다만 ‘요즘 애들’이 갈망하는 돈은 경쟁의 피라미드 윗단에 올라 우월감을 과시하며 갖지 못한 이들을 내려다보기 위함이 아니다. 물질은 그저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침범당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꾸려가는 데 필수 요소일 뿐이다.
요즘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꽤나 모범적이고 부지런하며 단정하다. 저자는 다이어리에 ‘습관 만들기’ 체크표를 만들어 일상의 습관을 기록하며 지키려 한다. 공복에 유산균 먹기, 나쁜 음식 안 먹기, 물 2리터 이상 마시기, 명상하기, 독서 한 줄이라도 하기, 아침 종이 신문 읽기, 식염수로 코 세척하기, 영양제 챙겨 먹기, 고양이와 놀아주기, 로봇 청소기 돌리기가 그 목록이다. 덧붙여 새벽 5시에 일어나기도 루틴으로 삼는다. 하루쯤 어겨도 되는 사소한 습관들이 쌓여서 일상을 더 건강하고 단정하게 만들며, 이것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구성한다고 본다.
‘요즘 애들’은 소비와 환경 면에 있어서도 미덕을 발휘한다. 예컨대 저자는 10년 넘게 보온 기능만 있는 단출한 전기밥솥을 쓰고 있다. 이건 ‘과잉’을 지양하기 위한 선택이다. 물건이 고장나지 않는 한 버리지 않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즉석밥이나 생수를 사먹지 않기. 패스트 패션을 입지 않고, 세제는 ‘소프넛’ 사용하기. 천연 면생리대를 쓰고,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물티슈도 사용하지 않기. 모두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념에 얽매이는 순간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배달 음식도 먹고 플라스틱 폐기물을 배출하기도 한다.
이들은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이런 실천을 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수가 싱글인 이들